여름이 되면 극장가에 공포물 영화가 걸리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다. 더운 여름에 공포물을 보게 되면 깜짝 놀라며 흘리는 식은땀으로 인해 잠시 피서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공포영화를 보면 몸속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뇌 혈류가 증가해 체온이 올라간다. 체온을 식히기 위해 온몸에 땀이 나고 이 땀이 증발하면서 열기를 식혀줘 시원하다고 느끼게 된다. 또한, 극심한 공포는 몸을 일종의 마비상태로 만들며 통증이나 더위 추위 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는 TV 드라마에도 연결되어 1977년부터 KBS에서 방영한 '전설의 고향' 시리즈에서 여름이면 구미호 혹은 처녀귀신과 같은 괴기물을 연속편성하기도 했다. '전설의 고향'은 이런 인기를 등에 업고 1977년 '마니산 효녀' 편을 시작해 1989년 '왜장녀' 편을 끝으로 12년간 방영되었다. 당시 드라마를 마무리하면서 매회 나오는 성우의 내레이션, "이 이야기는 0000 지역에서 전해지는 전설로 ◇◇◇을 뜻하는 것입니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귀신, 혹은 악마가 등장하는 공포물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은 과학적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초자연적 공포물보다는 '좀비'로 대표되는 공포물이 인기를 끌게 된다. 원혼이 시체에 붙은 홍콩영화 속 '강시'와 달리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변한 좀비는 과학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이 기존의 귀신들과는 다른 점이다. 더위가 극에 달했던 올 여름 극장가에는 좀비가 등장한 '부산행'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에버랜드와 롯데월드와 같은 놀이공원에서도 핼러윈(Halloween)을 두 달 가까이 앞두고 '좀비 축제'를 열고 있다. 지나 4일과 6일 롯데월드와 에버랜드를 찾은 관람객들은 갑자기 등장하는 좀비 연기자들로 인해 비명을 지르며 놀라기도 했지만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등 즐기는 분위기였다. 일부 관람객은 좀비 퍼레이드를 보며 좀비들의 연기를 품평하기도 했다.
핼러윈은 기원전 5세기 때 지금의 영국 및 북부 유럽, 아일랜드 지역에 살던 켈트족의 풍습이었다. 겨울이 긴 지역특성으로 10월31일을 마지막 여름으로 보고 11월1일을 새해 첫날로 기념했다. 10월31일이 되면 태양의 힘이 약해져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녀나 혼령이 사고를 일으키고 산 사람의 몸으로 들어오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0월31일 밤 귀신처럼 분장한 뒤 시끄럽게 돌아다녀 혼령이 착각하게 하고 놀라서 도망가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으로 이주한 아일랜드계 주민 사이에서 이어진 이 축제가 재미있는 놀이문화로 확산하면서 이제는 우리도 즐기는 문화가 되었다. 초창기에는 유학 등으로 미국문화를 접한 일부 젊은층에서만 즐기던 핼러윈 파티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영어회화 원어민 강사가 늘고 유치원, 학원 등지에서 학생대상으로 핼러윈 파티를 열면서 10~20대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대형 마트에서 파티용품 판매가 이어졌고 놀이공원에서 관람객을 위한 소재로 핼러윈 행사를 마련하면서 이제는 잠시 즐기는 놀이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초창기 드라큘라, 혹은 귀신 모습의 분장보다는 요즘은 놀이공원 축제의 주제도 '좀비'일 정도로 좀비로 분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팥죽을 먹으며 긴 동지 밤을 보내는 우리 전통의 귀신퇴치법을 기억하는 젊은이가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쉽긴 하다. 하지만 세계화된 세상 속에서 즐거움을 위해 서양귀신이든 동양귀신이든 놀이소재로 만드는 추세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사진·글=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