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생각 반성했어요"|현장에서 본 대학생들의「농활」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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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학생들의 농촌봉사활동이 한참이다. 학교에서 허락한 의료·기술봉사의 활동 말고도 의식화운동권학생들이 주동이 된 농촌현장체험「농활」이 전국 여러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당국의 강력한 사전봉쇄방침으로 방학중 학원사태로 번졌던 의식화「농활」은 올해 뜻밖에도 유연한 당국의 대응으로 현재까지는 별 마찰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현장>
『아주머니, 일거리 없읍니까.』
채 햇살이 퍼지지 않은 상오6시. 낯선 목소리가 경북 영양군 청기면 상청동 산골 주민들을 깨운다.
『학생들, 매일 미안해서 어쩌지. 오늘은 담배잎 따는 일손이 모자라는데…』
일거리를 부탁하는 아주머니의 표정은 미안해하면서도 환하다.
서울대 외교학과학생 11명이 이 마을을 찾은 것은 지난달 30일 저녁.
마을 노인회관의 4평짜리 방에 짐을 풀자마자 일자리를 찾아나섰다.
일거리는 주민들이 직접 갖고오거나 학생들이 아침 일찍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얻는다.
아침식사후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작업반장이 일을 배분한다.
작업반장 최모군(20)의「엄중지시」.
『여러분은 이제 대학생이 아니야. 갓 시골에 이사온 농군처럼 일해야 한다. 주민들 보는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말것. 건방져 보이니까. 작업중 쉴때도 절대 드러눕지 말것. 거머리가 있어도 논에 과감히 들어가라.」
최군의 마지막 말에 폭소가 터진다.
학생들이 일터로 나가는 시간은 상오7시30분. 하오1시까지 일하고 하오2시부터 다시 작업을 시작, 하오6시30분에 끝난다.
하루 10시간의 강행군.
『오늘은 조씨집등 5군데에서 일거리가 들어와 기분이 좋습니다. 지난해에는 일거리를 제대로 못받아 애를 먹었거든요. 일거리는 농활의 사활이 걸린 문젭니다.』일터로 떠나는 최군의 말.

<일과>
하루 10여시간 논밭일에 비해 잠은 5시간미만. 일과표에는 상오1∼6시까지 취침시간으로 돼있지만 밤10시30분에 시작되는 평가회를 하다보면 상오2시를 넘기기 일쑤.
힘겨운 일과 못지 않게 생활도 철저한 규율아래 통제된다.
「숙소밖 절대금연」「일단 책임자의 지시를 따르고 이의는 나중 제기한다」「개인행동 엄금」「밤에 남녀가 단둘이 다니는 것을 삼간다」「주민들에게는 항상 먼저 인사한다」는 등.
새참과 술조차「민폐」로 금기사항.

<야간 활동>
저녁 식사후에는 분반활동이 시작된다. 청년반·부녀반·학생반·아동반등으로 나눠 주민들과 학생들이 의견을 나눈다. 학생들이 가장 역점을 두는 곳은 청년반 활동.
농민과의 상호의식화 활동을 벌인다는 농활의 또한 목적이 있기때문이다.
5일밤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리 고대학생들과 마을청년들의 대화.
-요즘 소값이 어때요.
『×값이죠. 소 키우면 바보소리들어요.』
-빚이 많습니까.
『빚없이 농사지을 수 있나요. 뼈빠지게 일해봤자 먹고살기 힘들죠. 지난해에는 추수한뒤 계산해봤더니 내 품삯이 하루5백50원입디다.』
-마을에 처녀가 안보이네요.
『누가 농촌에 남으려고 하겠습니까. 저는 별다른 재주가 없어 별수없이 마을을 지키고 살지만 장래도 없고 될대로 되라는 심정입니다.』
밤8시부터 3시간 가까이 계속된 대화는『내일은 농가부채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하자』는 농활대원의 말로 마무리.
이어 자체평가회.

<평가>
『오늘 7가구를 방문, 농협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읍니다만 대화방법의 미숙으로 본질적인 문제까지 접근하지는 못했읍니다.』(장년반)
『소값파동·이농현상 등에 관해 오늘은 개괄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분위기는 좀 딱딱했던것 같습니다.』(청년반)
분반활동보고후 1학년이 소감발표를 했다.
『응석을 부리며 책임을 회피한것 같습니다. 농활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한 점을 깊이 반성합니다.』
농활대장은 평가회가 끝날 무렵『농민들과 접촉할 때는 날씨나 농사지식에 관련된 대화부터 시작하라. 가능한 용어는 농민들이 쓰는 말을 빨리 익혀 사용할것』을 지시했다.

<당국·주민>
당국은 올해 지난해와는 달리 대학생들이 농활 현지에서 시위등 집단행동이나 유인물 살포등 지나친 행동이 없는한「동태파악」에 그친다는 입장이어서 학생들은 비교적 순조롭게 활동중이다.
서울대 사회대와 법대생 2백여명이 내려간 경북 영양군의 경우 황인성군수(53)는 면장·동장들에게『쓸데없이 농활현장주변에 접근, 관에서 농활을 저지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까지 했다.
주민들의 반응도 대체로 호의적. 경북 영양군 청기면 상청동 주민 조병학씨(52)는『처음엔 학생들이 시위등 소란을 벌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던것 같아요. 일도 품팔이 일꾼보다 더 열심히 해 동네 어른들의 칭찬이 많습니다. 내년에도 와주었으면 좋겠읍니다.』고 말했다.

<농활 목표>
학생들은 농활을「농촌현장에 들어가 농민과의 만남을 통해 농촌의 모순해결을 지향하는 집단적·의식적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82년부터 과거 서클중심에서 학과·단대단위로 전환했다. 농활은 대농민적 의미외에도 극한적 훈련을 통한 자체의식의 첨예화와 극한상황을 함께 견뎌내는데서 오는 동료의식의 확보도 이에 못지않은 활동목표.
『이 시대의 가장 소외된 지역이며 계층인 농촌과 농민을 현장에서 노동의 체험을 통해 공부한다는 것은 대학생활에서 다른 어떤 체험보다 인상깊고 값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다 많은 대학생들이 이런 체험의 기회를 갖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강원도 평창군에서 만난 고대 김선익군(22·법3)의「농활」닷새 중간결론이었다.

<김두우·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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