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쓴 편지]영화 ‘똥개’ 철민

중앙일보

입력

참말로 세상이 좋아져갖고예, 지같은 놈이 이래 떡 나서서 떠들 수가 있네예.

안녕하십니꺼. 똥개 철민입니더. 지도 테레비를 많이 봐서 아는데예. 옛날에는 주인공들은 서울말만 썼다 아입니꺼. 사투리는 식모 아이믄 깡패 같은 거밖에 안했는데. 요새는 영화주인공들은 다 사투리만 쓰데예. 옛날에는 가시나들이 서울말 쓴다고 말꼬리만 살살 올리믄서 흉내내는 거 꼴뵈기 싫어 죽겠드만 요새는 사투리 쓰는기 더 매력적이라나 함서 막 쓴다 카데예. 머 그란다고 서울 넘들이 촌놈들 중한 줄 알겠습니꺼마는. 우쨌든 내는 웃길라고 사투리 쓰는 거 아입니더. 내는 진지한 놈인기라예.

이름이 와 똥개냐꼬예. 그라게 말입니더. 아버지는 우짜자꼬 하나밖에 없는 옥동자를 똥개라고 불러대는지. 귀한 아들을 원래 그리 부르는기라꼬예. 말 마소. 내는 귀한 아들이 아이고 진짜 개만도 몬합니더. 맨날 아부지 밥해주고 김치 담가주고 식모보다 더 부리묵고는 밥 먹을 때는 내 계란프라이까지 다 뺏아 묵고예. 내가 우리집 똥개 잡아묵은 놈들 좀 패갖고 고등학교 짤릴 때도 그렇지예. 아부지가 형사믄 쫌 힘좀 써줄만도 할낀데 마 그냥 짤리든 말든 내비둔다 아입니꺼. 진짜 친아부지 맞나 싶어예.

근데 아부지가 "니 낳을 때 의사가 니 낳으면 엄마가 죽는다 카더라. 그래도 내가 니 낳아 달라꼬 캤다"카는 걸 본께 진짜 아부지가 맞긴 맞는거 같에예.

그라고 맨날 뒤꽁무니로 돈이나 받아 묵고 한심한 형사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친구 대떡이 아부지 돈 뺏아묵은 사장놈 잡아넣는 거 보이께네 양심은 있는 형사같데예. 그땐 쪼매 아부지가 존경스러웠십니더. 사랑예? 징그럽은 소리 하지 마이소.

그래도 아부지는 맨날 내를 구박만 합니더. "니 고마 그래 살라카나. 도대체 뭐가 될라 카노" 하믄서예. 사실 내도 잘 모르겠습니더. 아부지한테는 "내도 다 생각하고 있다"꼬 버티기는 했지만예. 이 촌구석에서 고등학교 짤리고 밥만 열심히 해주다가 한 세월 다간 놈이 뭘 할 수 있겠습니꺼. 근데예, 진짜로 모르겠는거는 와 꼭 사람이 뭐가 돼야 하는 깁니꺼.

인생이 뭐 맨날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꼭 사장님이든가 깡패라든가 아이믄 사랑에 목숨거는 넘이라든가 그런 거만 있는거 아이지 않습니꺼. 예, 지는 뭐 "고마해라 마이 뭇다 아이가"카는 깡패 놈처럼 찐하게 함 살아본 것도 아이고 지 첫사랑 돌리 달라고 영도다리 밑에서 깨벗어 제끼는 그런 놈처럼 열정도 없습니더.

폐차장에서 고철이나 나르고, 가끔씩 MJK 넘들이랑 어울리고, 테레비 보고 그래 삽니더. 그래도예 나는 의리도 있고 힘도 좀 씁니더. 동네 건달들 다 내 무섭어 한다 아입니꺼. 이런 놈이 우째 주인공이냐꼬예? 내가 안캤습니꺼, 세상 좋아 졌다고예.

하지만 내는 언젠가는 한번 "내를 보여줄"날이 올기라 믿습니더. 그기 뭔지는 잘 모르겠지마는예. 함 꼭 보여줄깁니더. 기다려 보이소.

영화 칼럼니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