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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재 부르는 핵실험 후폭풍 역이용 김정은 리더십 과시하고 내부 결집 노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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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호 4 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 성공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은 그들의 정권수립일인 9·9절을 맞아 5차 핵실험을 전격적으로 감행했다. 북한 당국은 핵실험 후 4시간 만에 이 사실을 비교적 상세히 공표함으로써 그들의 핵능력을 과시했다. 그들은 이번 핵실험에서 핵탄두를 실험하며 대량생산 표준화를 달성했고 핵물질 이용률도 높였다고 강조했다.


한·미·일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조차 이번 북한의 핵실험을 강하게 반대하며 비난하는 데 동조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북한의 5차 핵실험을 강하게 규탄하고 추가 제재 내용을 담은 결의안 마련에 즉각 착수하기로 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안보리의 대북 추가 제재 조치를 담은 결의안 도출도 비교적 신속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로써 북한은 또다시 보다 강력한 제재 국면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북한은 이러한 ‘후과’를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김정은 정권은 사서 고생하는 듯한 핵실험 도발을 감행했을까.


먼저 김정은 정권 유지라는 수세적 차원에서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다. 김정은 권부 엘리트들은 핵실험을 통해 핵능력을 고도화하는 것만이 김정은 정권을 지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핵 수단을 통해 외부로부터의 정치·군사적 압력을 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평양 당국은 오직 믿을 것은 ‘자강력 강화’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자강력 강화를 위한 수단인 핵무력 고도화를 멈출 수 없기에 국제적 제재와 같은 압박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감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김정은 정권은 보다 공세적 차원에서도 핵 수단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북한 당·정·군의 최고 권력을 세습한 김정은은 ‘후과’로 초래되는 충격파를 역으로 그의 권력 공고화와 유지를 위해 적극 활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핵실험으로 국제적 제재 분위기가 고조되면 김정은 정권은 이를 외부로부터의 대북 압살책동으로 과장 선전하면서 내부적 결집을 도모하고자 하며, 특히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결을 조장해 이 대결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로 김정은을 부각하려 한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핵실험과 같은 과감한 승부수를 던져 결국 미국을 굴복시킬 정도의 ‘위대한’ 김정은 지도자상을 부각하고자 한다. 북한은 이번 핵실험을 집권 5년차에 접어든 김정은 권력의 정통성 강화로 정권의 공고화를 꾀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 당국이 9·9절을 선택해 5차 핵실험을 감행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북한의 9·9절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 정권 수립일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대대적으로 기념행사를 펼친다. 5차 핵실험 일자를 9·9절로 선택한 것도 바로 김씨 정권을 계승한 김정은 정권의 강대성을 시위하고 기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3차, 4차 핵실험도 김정일 생일(2월 16일), 김정은 생일(1월 8일)을 각각 앞두고 감행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는 달리 후계 지도자로서의 능력과 정통성을 쌓을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만큼 인위적으로라도 자신의 지도자상을 부각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동시에 김정은 정권은 이번의 전격적인 핵실험 강행으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이 앞장서서 벌여온 대북제재와 압박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대해 과감하게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 그의 지도역량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자 한 측면이 강하다. 실제로 북한 당국이 5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난 후 “이번 (핵)시험은 당당한 핵보유국으로서 우리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한사코 부정하면서 우리 국가의 자위적 권리 행사를 악랄하게 걸고 드는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의 위협과 제재 소동에 실제적 대응조치의 일환으로 적들이 우리를 건드린다면 우리도 맞받아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당과 인민의 초강경 의지의 과시”라고 강조하고 나선 것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에 더해 북한 당국은 핵능력 고도화로 핵보유국의 지위를 갖게 되면 ‘강성대국’으로 대접받게 될 것이고 이것은 곧 대외관계에서 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외교적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갖고 있기도 하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9일 평양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된 9·9절 68주년 행사에서 “핵보유국의 지위에 맞게 대외관계를 확대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하면서 “공화국 정부는 민족자주, 민족대단결의 이념 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것은 우리에게 김정은 정권이 남북관계를 포함한 모든 외교적 주도권을 핵 보유로 쟁취해 강성대국을 건설한다는 ‘환상’을 갖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거듭하면 할수록 국제적 제재는 강화된다. 김정은 정권의 대외적 관계도 확대 발전하기보다는 더욱 제한되는 ‘덫’에 갇혀버린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이러한 환상에서 깨어나 보다 현실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영태 동양대 군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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