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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마이클 무어 감독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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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소 대신 꽃을 든 이상주의자, 유토피아를 꿈꾸다


분노·냉소·독설로 무장했던 돈키호테, 마이클 무어(62) 감독이 달라졌다. 한때 그는 공화당으로부터 미국을 구하려는 허풍쟁이 수퍼 히어로 같았다. 무어 감독은 대표작 ‘볼링 포 콜럼바인’(2002) ‘화씨 9/11’(2004) ‘식코’(2007) 등을 통해 조지 W 부시 정권을 맹렬하게 공격한 바 있다. 그의 염원대로 부시에서 버락 오바마로 정권이 교체되던 시기에는 ‘자본주의:러브 스토리’(2009)라는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기업가들이 어떻게 자본주의를 변질시켰는가’에 대해 파헤쳤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았으니, 9월 8일 개봉한 장편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는 국내 관객이 더욱 오랜만에 만나는 무어 감독의 신작인 셈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는 공격 대상이나 음모론도 없고, 사회 시스템 자체를 비난하려는 의도도 없어 보인다. 오바마 체제의 미국을 보는 그의 시선이 바뀐 게 분명하다. 그는 지금 미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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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 감독 [중앙포토]

과거 마이클 무어 감독은 조시 W 부시 시대를 끝장내 버리기 위해, 영화 안팎으로 백인 보수층을 집요하게 물어 뜯었다. 정권이 교체되고 버락 오바마 체제에 들어서니, 웬일인지 이 남자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물론 무어 감독은 꾸준히 책을 쓰고 강연을 했지만, 영화감독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은 아니었다.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로 돌아온 마이클 무어

다큐멘터리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평가받던 감독이었으니, 그의 공백은 더욱 커 보였다. 짚고 넘어갈 영화가 있긴 하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비판한 ‘자본주의:러브 스토리’다. ‘식코’를 통해 미국의 부조리한 의료 시스템을 고발했다면, 이 영화에서는 미국의 추악한 경제 시스템을 고발한 것이다. 신작 ‘다음 침공은 어디?’는 이전과 달리 낙관적이고 유순해진 무어 감독을 보여 준다.

비판하기에 앞서 반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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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보험 민영화에 대한 마이클무어 감독 영화 `식코` [중앙포토]

‘다음 침공은 어디?’의 시작은 제법 요란하다. 무어 감독은 “국방부의 은밀한 부름을 받아 미국 합동참모본부를 만났다”고 허풍 떤다.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에서 한 번도 이겨 본 적 없으며, 엄청난 돈만 낭비하고 석유조차 못 챙겼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미군에게, 무어 감독은 자신이 직접 여러 나라에 쳐들어가 필요한 걸 빼앗아 오겠다고 호언장담한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편집의 대가 무어 감독의 농담이다. 성조기를 든 남자, 무어 감독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음 침공은 어디?’는 ‘침공’이란 단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서 무어 감독이 말하는 침공이란, 몇몇 나라를 방문해 미국이 갖지 못한 선진 복지 시스템을 훔쳐 오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탈리아의 8주 유급 휴가 발상이나 프랑스의 미슐랭 3스타급 학교 급식, 슬로베니아의 무상 대학 교육, 노르웨이의 너무나 인간적인 교도소, 독일이 과거사를 인정하는 방식, 포르투갈의 전 국민 무상 의료 제도 등이다. 무어 감독은 각 나라의 시민과 관련 공무원, 심지어 대통령까지 만나 조언을 듣는다. 그리고 그 나라의 장점을 훔쳐 가겠다고 공언하며 성조기를 꽂는 것으로 미션을 완료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소개하는 ‘복지’란 그리 새로운 게 아니다. 무어 감독은 이미 ‘로저와 나’(1989)에서 기업의 탐욕을, ‘식코’에서 환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민간 의료보험 제도를,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공포를 조장하는 미디어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몇 가지 새롭게 추가되긴 했지만, ‘다음 침공은 어디?’는 무어 감독이 이제까지 말했던 주제를 집대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스타일은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기업 총수를 집요하게 따라다니거나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비아냥대는 무어 감독은 이 영화에 없다. 인터뷰 분위기는 대체로 훈훈하고, 무어 감독은 논쟁하기보다 공감하며 청자의 겸허한 자세를 취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헨리 반스는 ‘다음 침공은 어디?’를 들어 “분노를 가라앉힌 어느 이상주의자의 작업”이라 평했다. 그의 말대로, 이 영화에서 무어 감독은 힘 있는 백인들을 추격하는 작업을 잠시 내려놓은 듯 보인다. 가장 큰 변화는, 특정 대상이나 사회 시스템을 고발하기보다 자기반성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무어 감독이 아이슬란드에서 만난 한 여성 CEO는, “미국인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틀렸다”며 이렇게 말한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밥도 못 먹고,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학교에도 못 다니는 걸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속 편히 살 수 있어요?” 그의 질책에 무어 감독은 잠시 침묵하더니 조용히 대답한다. “제 속도 안 편해요.”

공격하고, 선동하고, 여러 사람을 당혹스럽게 했던 무어 감독. 이번 영화에서 그는 스스로 비판받는 대상이 된다. ‘너’의 탓, ‘시스템’의 탓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지 않았던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굳이 훔치지 않아도, 위대한 아메리카에는 그러한 덕목이 충분히 있으니 함께 그 힘을 되찾자”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다음 침공은 어디?’는 무어 감독의 가장 사적인 영화이자 여행기이며 이상적인 동화다. 또한 헨리 반스가 표현한 대로 “설탕이 과도하게 코팅된 과자” 같은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여전한 엔터테이너 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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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 스틸 이미지. 사진 영화사 제공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편집, 편파적인 정보, 대안 없이 은근슬쩍 치고 빠지는 무책임함. 무어 감독에게는 늘 이러한 부정적인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무어 감독의 영화에서 정확성이나 객관성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겠지만, ‘다음 침공은 어디?’야말로 ‘팩트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비판받는 지점은 단순 비교를 통해 미국을 디스토피아로, 미국이 아닌 나라를 유토피아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유럽의 난민 위기 이전에 완성된 것을 고려하더라도, 이 영화에 제한적인 시선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무어 감독은 “이탈리아가 결혼과 출산에 넉넉한 유급 휴가를 제공할 뿐 아니라, 한 달간의 유급 휴가를 추가로 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사회 시스템이 현재 이탈리아의 경제 위기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달달하고 이상적인 아이디어가 넘친다. 하지만 유럽이 겪고 있는 실업이나 이민 정책, 민족주의의 부상 같은 현실은 생략돼 있다.

이에 대해 무어 감독은 “실리콘 밸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미국의 총기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아이디어를 이 영화에서 제시했을 뿐이다”라고 대응했다.

무어 감독에 대한 변호를 하나 더 덧붙이자면, 미국 일간지 ‘뉴욕 타임스’의 스티븐 홀든의 평을 옮기는 게 좋겠다. 그는 “이 영화는 반 정도만 진지하고, 전반적으로 과장돼 있다. 그럼에도 관객들을 꿈틀거리게 하고,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할 만한 충분한 진실이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재미있다. 처음 공개됐을 때 무어 감독이 무뎌졌고 게을러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진지한 문제를 대중적으로 풀어낼 줄 아는 무어 감독의 재능이다.

‘다음 침공은 어디?’는 무어 감독의 변화를 보여 주는 동시에, 그만의 엔터테이너 기질이 건재함을 증명한다. 재기 발랄한 편집, 인터뷰 도중 보이는 다소 과장된 반응, 핑퐁 같은 대화 등 무어 감독만의 영화적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성이 단순하고 평이한 구성을 살린다. 하지만 무어 감독의 전작들에 비하면, 이 영화를 ‘걸작’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펄펄 끓는 진실이나 날카로운 주제 의식, 통쾌함도 부족하다. 그도 이제 환갑이 넘었으니, 왕년의 에너지가 쇠한 것일까. 글쎄,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어 감독의 영화는 여전히 재미있고, 관객의 생각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가졌다.

신민경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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