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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서별관 회의 왜 안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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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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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한진해운 법정관리는 사실 의외였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줄곧 ‘법과 원칙’을 주장했지만 나는 반신반의했다. 한 달 전쯤 사석에서도 그는 “약 1조원의 부족 자금을 한진그룹이 해결해야 한다”며 단호했다. 돌이켜보면 강한 의지를 담은 말이었는데도 그땐 잘 믿기지 않았다. 조양호 한진 회장을 압박해 가능한 한 더 많은 돈을 끌어내려는 전술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아뿔싸, 지난주 금융위원장의 약속은 지켜졌다. 한진해운은 퇴출됐다. 17년 전 외환위기 이후 나는 금융 당국의 퇴출 엄포(?)가 실현된 것을 처음 보았다. 파장은 컸다. 물류 대란, 수출 한국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합동 대책반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더 놀라운 것은 과정이다. 너무 밋밋했다. 채권단의 발표문 하나가 전부였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육로가 막혀 뱃길로 70%의 물량을 실어나르는 나라가, 그 수출 길을 끊는데 그저 돈계산만 따지는 은행에 결정을 떠넘긴 것이다. 금융위는 ‘교과서대로 했다’는 말만 되뇌었다. 과연 그걸로 충분한가.

나는 서별관 회의가 열렸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경제수석, 해양수산부 장관, 금융위원장,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속내를 터놓고 한진해운 처리를 고민했어야 했다. 서별관 회의가 뭔가.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안을 조율하는 자리 아닌가. 부실덩어리 대우조선해양에 4조원 넘는 지원을 전격 결정한 서별관 회의를 야당이 ‘밀실 야합’이라고 비판했을 때 청와대는, 금융위는 뭐라고 반박했던가. “외부에 알리기 어려운 비교과서적인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 있다. 그럴 땐 관계 장관들끼리 얼굴 맞대고 허심탄회 논의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야 “장관들이 중지를 모은 결과”라며 대통령을 설득하기도 쉽다면서.

꼭 필요하다던 서별관 회의는 그러나 없었다.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처음부터 예정된 시나리오가 있었을 가능성이다. 한진해운 퇴출과 현대상선에 의한 흡수 합병이 그것이다. 금융위원장이 아무리 센 자리라지만 세계 7위, 국내 1위 국적 선사의 퇴출을 어찌 혼자 결정하랴. 그 윗선에서의 강력한 주문이 있었을 것이다. 일각에서 한진이 괘씸죄에 걸렸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두 번째는 아무도 총대를 안 멘 것이다. 청와대와 부총리부터 나 몰라라 하니 결국 금융위원장이 독박을 썼을 가능성이다. 지금 봐선 전자 쪽이다. 그렇지 않고선 ‘법과 원칙’대로 법정관리에 넣은 기업에 ‘대통령의 뜻’이라며 사재출연을 또 압박하는 부총리와 금융위원장의 ‘불법적인’ 행태를 설명할 길이 없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한진해운이 대우조선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은 하청·협력업체 포함 노동자가 4만3000여 명이다. 여야가 거제에 내려가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힘자랑을 했다. 은행 빚이 22조원으로 어마어마하다. 대주주는 사실상 정부다. 반면 한진해운은 직원이 고작(?) 4300명, 은행빚은 1조원밖에 안 되고 대주주는 한진, 재벌그룹이다. 그러니 정치권도 나 몰라라 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은행 빚이 많거나 노조가 강했다면 이리 됐겠냐”고 자조했는데 나는 충분히 고개가 끄떡여졌다.

한진도 오판하긴 마찬가지다. 청와대가 문을 걸어 잠그고 총수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을 때, 금융위와 논의하라고 잘랐을 때 진작 알아챘어야 했다. 그건 ‘더 이상 조율은 없다’는 통보라는 사실을. 17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대우그룹 워크아웃 몇 달 전부터 김우중 회장의 면담 요청을 거절한 게 좋은 예다. 애초 한진으로선 금융위와 맞서 “법정관리에 넣을 수 있으면 넣어보라”는 식의 치킨게임을 벌일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부터 서별관 회의 청문회가 열린다. 야당은 묻고 따질 것이다. 왜 대우조선은 한진해운처럼 법대로 원칙대로 하지 않았나? 청와대는, 경제부총리는 금융위원장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라서?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아서? 그래서 서별관 회의가 사실은 필요 없다고, 스스로 한진해운 처리를 통해 증명하고 난 후에 말이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