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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초본·최종본의 기술상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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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중초본과 최종본을 비교하면 중초본.최종본 제작을 모두 서인들이 주도해 큰 줄기는 같으나 세부적 표현들이 차이를 보인다. 중초본의 경우 서인 입장에서 인물 평가를 내렸지만, 최종본에 이르면 그 내용이 보강되어 있으며 다소 주관적인 시각도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윤원형(尹元衡.?~1565) 등과 함께 권력을 남용해 뇌물을 받았다 하여 선조 즉위 연도에 삭탈관직당한 심통원(沈通源.1499~? )에 대해 최종본은 그의 치부를 묘사하며 "대문 앞이 시장통과 같았다"고 표현했으나 중초본에는 이 내용이 없다.

윤원형 세력에 가담했던 윤춘년(尹春年.1514~1567)에 대해서는 중초본.최종본 모두 비난하는 논조는 같다. 하지만 중초본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묘사했던 데 반해, 최종본은 윤춘년이 만년에 음사에 빠졌다는 세간의 평까지 반영했다.

한편 백인걸(白仁傑.1497~1579)은 을사사화 때 소윤(小尹)에 의해 파직되고 1547년 정미사화에 연루되어 안변에 유배되었다 소윤의 거두 윤원형이 죽자 복직해 대사헌까지 오른 인물로 최종본에서 내용이 보강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인 편을 든 것으로 오해를 사 고초를 겪은 백인걸을, 서인들이 집권해 '선조수정실록'을 만들면서 그의 공적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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