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법원장 대국민사과, 법원 내부의 변화로 이어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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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승태 대법원장이 현직 부장판사 구속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법원장이 판사 비리 사건으로 국민 앞에서 고개를 숙인 것은 10년 만으로, 이번 사태를 얼마나 엄중하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준다. 문제는 과연 법원이 부정한 청탁과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느냐다.

양 대법원장은 어제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사법부를 대표해 국민 여러분께 끼친 심려에 대해 깊이 사과드리며 앞으로 밝혀질 내용에 따라 엄중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렴성에 관한 신뢰 없이는 사법부의 미래도, 법관의 명예도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법원장들은 ▶상시적·지속적 문제 예방을 위해 윤리감사관실의 기능 강화 및 확대 개편이 필수적이고 ▶법관 징계 절차에서 충분한 자료를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연임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그간 비위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법관의 신분 보장에 치우쳐 적극적인 조사에 나서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개선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다짐과 방안들을 실행에 옮기려는 노력이다. 시민들이 판사들에게 바라는 건 사회와 단절된 수도자 생활이 아니다. 최소한의 직업윤리를 지키면서 부적절한 뒷거래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판사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한편 실효성 있는 비리 감시·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관건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법관의 신분과 재판상 독립을 보장하면서 법원 내부에 비위 의혹을 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헌법이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는 것은 판사 개인의 특권이 아니라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따라서 비위 의혹에 대해선 법원의 진상조사 권한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가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선 ‘돈과 권력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판사들의 결연한 각오가 필요하다. 다시는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언행 하나, 호흡 하나에도 절제를 잃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