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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 1등 아니면…’ 스포츠 꿈나무의 슬픈 선택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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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재

최근 열린 2016 리우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를 따내며 종합 8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종합 10위 이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많은 메달이 걸린 육상·수영 등 기초종목에선 단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비인기종목은 메달 가능성이 있을 때만 반짝 관심을 받을 뿐, 중계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메달권에 근접한 종목들에선 경쟁에 치우쳐 지나치게 응원 일색인 중계로 비판이 일었다. 국내 스포츠계의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투영된 모습이다.

청소년들 중에는 한때 국가대표의 꿈을 꾸며 땀을 흘렸지만 여러 한계로 인해 진로를 바꿔야만 했던 ‘선수 출신’들이 있다. 올림픽의 여운이 식기 전, 그들의 경험을 들어봤다.

윤지원(18) -복싱

[자료사진=중앙포토]

[자료사진=중앙포토]

제 8회 관악구 연합회장배 페더급 우승
제 9회 관악구 연합회장배 페더급 우승
제 10회 관악구 연합회장배 벤텀급 우승
제 1회 동작구 연합회장배 벤텀급 우승
제 34회 전국 망상대회 페더급 우승
제 31회 전국 소년체전 선발전 및 서울시대회 페더급 우승
제 43회 전국 소년체전 페더급 8강

“복싱은 우리나라에서 비인기 종목이기 때문에 인프라가 부족해요. 또 실력이 좋아서 잘된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젊을 때 운동선수, 늙어선 코치…. 그거 말고 다른 길이 있나요?”

윤지원 학생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복싱을 했다. 중학교 2학년 동작구 체육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데뷔했고, 이어 관악구 등 서울시 7개의 구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참가해 경력을 쌓았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전국 소년체전 대회에 서울시 대표로 선발되어 8강까지 진출했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점은, 복싱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것이었다. 공식적인 복싱 선수단을 찾기도 쉽지 않았고, 본인 체급에 맞는 또래 선수들을 찾기는 더욱 어려웠다. 체격이 다른 40대의 어른과 함께 연습을 했다. 환경이 그렇다보니 실제 경기에서 실수가 많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할 때쯤 선택을 해야만 했다. 계속 복싱선수의 꿈을 이어나가느냐, 아니면 꿈을 접고 공부를 시작할 것이냐. 부모님과 코치와 긴 상담 끝에 공부를 시작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거에는 복싱이 인기 종목이었으나, 최근에는 완전히 비인기종목으로 전락해버린 현실 때문이었다. 전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는 것도 미지수이지만 된다 하더라도 지원이 넉넉지 않아 성공의 여부를 알 수 없었다. 위험이 있는 선택보단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현재 윤지원 학생의 희망 진로는 체육교사다. 이를 목표로 운동에 가졌던 열정을 공부에 쏟고 있다.

김민석(18) -아이스하키

[자료사진=mevans111, 픽사베이]

[자료사진=mevans111, 픽사베이]

“미국은 경기장도 넉넉하고, 선수단이 많아 지원이 많은데…. 한국에선 수도권은 목동, 과천밖에 없다보니 대관료도 비싸고 선수단도 얼마 없어서 백 몇 만원하는 장비 대부분을 사비로 구입해야 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에서 처음 아이스하키를 접한 김민석 학생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 주최하는 아이스하키 게임에서 ‘Best Player’상을 받은 적이 있다. 선수로서 그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경력이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빙상장이 얼마 안 된다는 것과 선수단 양성의 규모가 작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처음에는 모두 사비로 해결해가며 훈련을 했다. 선수단끼리 빙상장도 빌리고 장비도 새로 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가 속한 선수단이 대한민국 청소년대표로 선출되면서 중국과 미국에 게임을 하러 나간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김민석 학생은 자부심을 느끼며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스하키의 비용이 점점 늘어나면서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비용을 감수할 만큼 한국에서 아이스하키의 미래가 밝은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결국 부모님과 상의해 운동 쪽의 진로를 아예 접자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그의 희망 학과는 과거의 목표와는 완전히 다른 경제학과이다.

김민성(18) -야구

[자료사진=alphacreativa, 픽사베이]

[자료사진=alphacreativa, 픽사베이]

2009년 제 22회 두산베어스기 리틀부 우승
2009년 제 4회 아시아나 항공기 전국 리틀야구대회 3위
2010년 제 7회 계룡시장기 전국 리틀야구대회 3위

“전국 최고가 되어야만 선수로 기억되고, 그렇지 아니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스포츠의 길과 다양한 성공의 길이 존재하는 공부의 길 중에 후자를 선택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운동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너무 좁거든요.”

김민성 학생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에서 처음 야구를 접했다. 야구에 흥미를 느낀 학생은 1년 동안 미국에서 꾸준히 야구를 하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에 돌아와 초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그가 속한 야구부는 제 22회 두산베이스기 리틀부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두 번의 전국 대회에서 3위의 성적을 내며 주변 중학교 코치들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그 또한 선택의 길에 섰다. 부모님은 야구선수의 길을 불안해 했고, 선택의 길이 넓은 공부 쪽으로 진학을 하라고 제안했다. 김민성 학생의 현재 꿈 또한 스포츠와는 전혀 다른 분야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아직 운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도 이같은 불안감에서 자유롭진 않다. 함께 운동하다가 그만두는 친구들을 보며 ‘1등이 아니면 안 된다’는 압박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운동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학생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조민우(18) -수영

[자료사진=tpsdave, 픽사베이]

[자료사진=tpsdave, 픽사베이]

제85회동아수영대회 접영100m은접영200m동
2013년 교보생명컵꿈나무체육대회 접영100m금 접영50m은
2013mbc배전국수영대회 접영200m동
제62회회장배겸kbs전국수영대회 접영100m2등
제4회김천전국수영대회 접영200m1등 접영100m2등
제9회제주한라배전국수영대회 접영50m2등
제43회 소년체육대회 접영100,200m금
제5회김천전국수영대회 접영200m금
제87회 동아수영대회접영200m금접영100m동
제96회전국체육대회 접영200m은
제11회 제주한라배전국수영대회 접영100m금
제30회체고대항접영200m금 접영100m은 혼계영400m은 계영800m동
제88회 동아수영대회접영100.200m은 계영400m은 혼계영400m은
2016mbc배전국수영대회 접영100m은자유형100m은 혼계영 400m동
제35회 대통령배전국수영대회 접영100m은

“나이를 먹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이 사라지는데, 마음이 아파요. 1등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포기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조민우 학생은 7살 때 유아스포츠단에서 우연히 수영을 접하게 됐다. 소질이 있는 것 같아 진로를 수영선수로 맞추고 지금까지 11년을 달려왔다. 초등학교, 중학교 모두 수영장이 있는 학교를 졸업했다. 수영에 대한 열정에 관한 한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듯 자신만만했다.

그가 11년 동안 진로를 바꾸지 않고 달리게 된 원동력은 바로 ‘보상’이다. 중학교 때부터 전국대회에 꾸준히 참가해 수많은 수상 실적을 남겨왔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성적’이라는 대가가 있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보람을 느끼며 계속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조민우 학생은 “만약 (성적이라는) 보상이 없었더라면 일찌감치 선수의 길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학생들이 1위가 될 만한 실력이 아니기 때문에 길을 바꾸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지적에는 ‘운동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은 1위가 아니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비인기 종목의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건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큰 문제로 꼽힌다. 그 배경에는 스포츠 선수 출신들의 진로가 너무 좁다는 현실이 깔려있다. 그 때문에 잠재력 있는 스포츠 인재들이 불안한 미래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틀고 있다. 좁은 엘리트 코스만을 강요하는 환경이 아니었다면, 선수 은퇴 후 진로가 조금 더 넓었다면 위 학생들의 선택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글=민성재(한영외고 2) TONG 청소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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