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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애가 기른 파|윤난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아침 설겆이를 하던 중인데 「쉬」를 하겠다고 화장실로 갔던 네살박이 딸아이가 어느샌가 물뿌리개를 갖고나와 거실로, 작은방으로 들락거린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제 동생이 귀찮던지 그리도 아끼는 새로 사준퍼즐을 주어 따돌리고는 아예 거실문을 닫아 접근을 막고 작은방에 쪼그리고 앉아 화분에 물을 주고있었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아이 곁으로 다가가『지혜야, 내일이면 파가 이만큼더 크겠네』두 손가락으로 한치의 간격을 만들어 보이며 물주기에 열중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난히도 추위가 빨리왔고 매서웠던 지난해 12월 중순께 차일피일 미루던 김장김치를 담그고나서 월동준비의 마무리로 그이와 함께 큼직한 빈화분에 옹기종기 파를 심었다
그로부터 열흘후 나물무침, 두부조림, 김치찌개, 미역국등 하루에 두서너가지씩 준비하는 반찬은 뾰족히 속아난 네댓개의 파 줄기로 양념하였고 가계부엔 지금까지 다섯달째 파구입비가 생략되었다
이틀에 한번씩 파화분에 물을주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날이 갈수록 새롭다 갈라 먹을수록 성장속도가 빨라지며 곁가지가 늘어나는 파는 볼수록 신기하다. 파를 심고 난 얼마후 그림책의 낱말공부를 하던 발음이 엉성한 큰아이가 돌연 책속의 파그림을 보고는『파』하며 정확하고 또렷한 발음을 내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자라는 연녹색의 단단한 줄기는 모든것이 침묵하는 겨울중에도 유일하게 생동하는 부지런함으로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적으나마 알뜰한 가계부 유지에 한몫 톡톡히 해주고있는 것도 참으로 고맙고 파를 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딸아이도 혼자의 생각으로 잘도 크는 파에 물을 주려는게 아닐까?

<경기도 시흥 의왕읍 포일리 540 청화아파트 2동3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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