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커가 아니라 옻칠(Ottchil)입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94호 6 면

한국 옻칠회화의 창시자인 김성수(82) 통영옻칠미술관장이 세계의 옻칠 작가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30일부터 10월 30일까지 경남 통영에서 열리는 ‘2016 국제현대옻칠아트전’이다. 통영옻칠미술관 개관 10주년을 겸한 이번 전시는 옻칠의 본고장인 통영의 옻칠예술을 중심으로 세계의 다양한 옻칠문화를 함께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최초의 전시다.


옻칠은 세계적으로 중국·일본·베트남·한국 4개국에서만 발달한 문화다. 이번에 초대된 4개국 110여 작가의 작품 160여점은 국가별 발전 양상에 따라 뚜렷이 다르게 드러나는 저마다의 개성과 정체성을 보여준다.


“일본의 옻칠은 국그릇·밥그릇을 중심으로 발달했고 한국은 자개를 가공한 나전이 발달했죠. 베트남은 옻칠그림을 최초로 그린 나라고, 중국은 거의 모든 대학에서 칠화를 가르칠 정도로 옻칠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김성수 관장은 “옻칠이 아시아 네 나라가 각자 수 천년 동안 계승하고 있는 독특한 전통 예술임에도 영어로 ‘라커(Lacquer)’라고 일괄 표기되고 있는 탓에 국가별 정체성이 상실되고 있다”며 “국가별 정체성을 세계에 널리 홍보하는 게 전시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했다.


“사실 금 도료보다 더 귀한 소재가 옻칠 재료에요. 그런데 우리가 외국에서 전시를 해보니 ‘라커’라고 하면 화학 도료로 인식되더군요. 그렇게 평가절하되는 게 억울하고 원통해서 2002년 미국 이민 100주년 기념전시를 제가 맡았을 때 처음으로 고유명사 ‘옻칠(Ottchil)’로 표기를 시작했죠. 중국은 ‘대칠(大漆?Daq?)’, 일본은 ‘우루쉬(うるし?Urushi)’, 베트남은 ‘산마이(SoN MAI? San Mai)’라는 고유명사가 있으니, 이번에 서로 윈윈하면서 정체성을 홍보해 함께 세계의 명품으로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전통에 머물지 않고 도약을 꾀하는 현대 옻칠예술의 가능성을 가늠해 볼 기회이기도 하다. 김 관장은 65년째 전통 옻칠을 연구해 온 장인인 동시에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한국 옻칠회화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옻칠회화는 베트남에서 시작됐지만, 우리 나전의 표현기법과 양식을 바탕으로 한 그의 옻칠회화는 소재의 한계를 넘어 현대미술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외국에서는 조개로 그려진 그림에서 독특한 미학을 발견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세상에 더 알리고 싶은 건 과학적인 측면이에요. 우리 옻칠미술관에는 방충망이 없을 정도로 옻칠은 방충성과 방수성, 내구성이 모두 뛰어나요. 비에 젖어도, 땅에 묻어도 그림이 안전하니 액자가 필요 없죠. 액자를 걷어낼 수 있는 그림 재료를 개발한 셈인데, 옻칠회화는 전통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앞서가는 창의예술이라 자부합니다.”


그는 한국 옻칠회화를 창안한 이래 중국 칭화대에서 많은 외국인 제자를 길러내는 등 세계를 무대로 도전을 계속해 왔지만,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통영옻칠의 예술적 가치를 정작 한국사람들만 잘 모른다며 안타까워했다. “독일에서도 초청전을 했었고 대영박물관에도 제 작품이 소장돼 있어요. 학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외국인들은 관심을 갖는데 한국에서는 옻칠이라면 안방의 자개장으로만 생각하죠. 평론가들도 연구하려 하지 않고요. 이번 기회에 한국인들도 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