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가 된 20년 전 그 소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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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호 29면

얼마 전 교구청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서려는데 한 수녀님이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저를 잘 모르시겠지요?”


“ 아! 네, 글쎄요…”


사실은 그 수녀님을 잘 몰라서 그냥 어디선가 강의나 피정 중에 만났던 분이었나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난 도통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구면인 분을 못 알아보는 실례를 저지르고 있나?’ 짧은 시간에 내 머리가 복잡해졌다.


“신부님! 20여 년 전 ○○병원 응급실에서 저희 가족들이랑 우연히 처음 만났지요. 신부님은 그때 거의 숨이 끊어져가고 있는 한 신자분의 마지막 병자성사를 주러 응급실에 들어오셨어요. 그 신자분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고 계셨지요. 마침 그 옆 침대에 저의 오빠가 교통사고를 당해 피투성이가 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었지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응급실을 나가시려는 신부님을 신자도 아니었던 저와 어머니가 붙잡고 애원을 했지요. 오빠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세례를 달라고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신부님은 아무 말 없이 오빠 곁에서 한참 기도를 해주시고 비상세례(非常洗禮·죽음이 임박한 이에게 예식을 생략하고 영세를 베푸는 것을 이르는 말)를 주셨어요. 그리고 저와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셨지요. 그때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오빠는 몇 달 후 정말 기적처럼 다시 일어났고, 모든 가족들은 성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녀가 되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난 그때야 비로소 오빠를 위해 무엇이든 해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잡고 애원하던 한 소녀가 떠올랐다. 벌써 20여 년도 훨씬 지난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생각이 났다. ‘이별은 만남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나보다. 그때의 짧은 만남이 이러한 만남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리의 인생에서 만남은 신비인 것 같다. 만남과 이별의 반복인 인생에서 우리는 수없이 행복과 고통, 슬픔을 경험한다. 또 그 과정에서 인간의 유한함과 인연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당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만남은 언제였나? 그 만남은 당신에게 무엇을 알려 주었던가?


우리들의 만남은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잠깐이라도 스쳐 지나간 사람들도 소중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 곁에는 사랑할 사람만이 있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다. ‘사랑’이다. 작은 인연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허영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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