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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시대에 따라 변하는 삼성 S급 인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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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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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올해 초 만난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은 “내 이름처럼 오(五)년 앞을 내다보며 하루하루 살다 보니 부회장까지 됐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반도체는 5년 뒤에도 1등을 자신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5년은커녕 1년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며 심각한 얼굴이었다. ‘갤럭시 운명은 아이폰과 중국에 물어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스마트폰 실적은 상대적이다. 애플이 어떤 아이폰을 내놓을지, 중국 업체들이 얼마나 따라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주 삼성전자 주가가 사상 최고인 167만원을 돌파했다. 상반기에 갤럭시S7이 2600만 대나 팔렸고, 하반기엔 노트7의 대박 조짐 덕분에 올 들어 37.8%나 올랐다. 반면 애플 주가는 제자리걸음이다. 사상 처음 아이폰이 2분기 연속 판매가 줄었고, 9월의 아이폰7에 대한 시장 반응도 신통치 않다. 아이폰의 부품 공급기지인 일본과 대만 언론들은 “애플이 아이폰7 부품의 주문량은 줄이고 납품단가는 후려치고 있다”며 비명을 지른다.

갤럭시 노트7은 홍채 인식과 방수 기능, 강화된 S펜을 자랑한다. 하지만 아이폰7을 압도할 ‘게임 체인저’는 아니다. 그럼에도 갤럭시 열풍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우선 세계 주요 통신사들이 든든한 후원군이다. 아이폰의 갑질에 지친 이들은 애플의 횡포를 견제할 대항마가 절실하다. 일반적으로 휴대전화 보조금은 이통사의 마케팅 비용과 단말기 제조사의 장려금으로 짜여진다. 세계적 이통사들엔 현금이 넉넉한 삼성 갤럭시가 아이폰 대항마이자 공동 마케팅 파트너로선 안성맞춤이다.

또 하나의 비밀은 삼성의 부품 및 제조 능력이다. 애플은 항상 3개 이상의 부품업체(벤더)를 두고, 인위적으로 주문 물량을 조절해 납품단가 인하를 압박한다. 또 안정성이 검증된 범용 부품만 쓰며 폭스콘 등 외부업체에 조립생산을 위탁한다. 반면 삼성은 하드웨어 경쟁력을 위해 보통 아이폰보다 부품원가가 7~15% 비싼 첨단 부품을 채택한다. 또한 핵심 부품 생산과 조립을 자체적으로 떠안는다. 삼성의 제조 능력은 그만큼 중요하다. 지난해 갤럭시S6의 실패도 수요가 집중된 ‘엣지’의 곡면화면 수율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스마트폰 공장에서 현지 삼성 간부들을 만난 적이 있다. 대부분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이었다. 이들 110여 명이 베트남 근로자 11만 명을 관리한다. “국내의 입사 동기들은 다 퇴직했어요. 반도체·LCD를 맡거나 미국·유럽을 담당하던 엘리트일수록 빨리 나갔지요.” 거꾸로 회사에 가장 오래 남은 게 이들이다. “우리는 브라질·인도 등에 공장을 짓고 가전제품을 팔았어요. 개도국에서 익힌 저임 근로자 관리 노하우가 지금 베트남에서 빛을 발하는 셈이죠. 20년 전 찬밥 신세에서 지금은 S급 인재라고 할까요? 하하!” 삼성의 S급 인재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모양이다.

삼성의 부문별 전망은 괜찮은 편이다. 지난해 갤럭시S6가 죽을 쑨 탓에 올 연말까지 갤럭시 교체수요가 탄탄하게 이어질 전망이다. 여기에다 반도체는 휴대전화를 중심으로 3D 낸드 수요가 크게 늘고, 삼성이 독주하는 OLED 시장도 급팽창하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착시현상은 금물이다. 냉정하게 보면 지금의 갤럭시 대박은 ‘아이폰 정체’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3년 전 실적을 반짝 회복했을 뿐이다.

오히려 향후 스마트폰 시장은 어둡다. 스마트폰의 성능 향상이 한계에 이른 데다 교체주기는 2년에서 2년 반으로 늘어났다. 애플이 아이폰7보다 내년의 아이폰 10주년에 내놓을 아이폰8에 더 집중한다는 소문이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쩌면 그 덕분에 갤럭시 특수는 연말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삼성전자 권 부회장의 표정도 연초보다 밝아질 것이다. 하지만 과연 “5년 뒤 갤럭시도 세계 1등을 자신한다”고 장담할지는 의문이다. 삼성이 1년 후라도 자신하려면 중요한 게 있다. 새로운 기술과 베트남 현지 간부들처럼 새로운 S급 인재들을 꾸준히 발굴해야 한다는 점이다. 갤럭시의 핵심 경쟁력은 여전히 부품과 제조 능력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