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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5.0 콘택트 렌즈 끼고 양궁 동메달 따는 날 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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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호 27면

인공생식세포. 줄기세포와 유전자가 위를 이용해서 인공적으로 정자나 난자를 만드는 기술이 보편화되면 태아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된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구경 중인 김길동씨와 로봇 코다는 도핑 논쟁 중이다. 어제 양궁 시합에서 동메달을 딴 선수가 착용한 콘택트 렌즈가 문제다. 렌즈가 시력을 무려 5.0으로 보정해 줬다는 것이다. 김씨는 공정한 경기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코다는 인체의 기능을 보완해주는 기술이 이미 보편화됐고, 세계반도핑기구(WADA)에서도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것이다. 친절한 로봇 코다가 여전히 못마땅해 하는 김씨에게 인체증강 기술의 현주소를 하나씩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인체증강 기술은 말 그대로 사람의 신체 기능을 인위적으로 증강시키는 기술이다. 원래는 질병이나 사고로 손상된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연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유전공학, 뇌공학, 나노공학, 정보공학 등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기능의 회복을 넘어 증강까지 추구하게 됐다. 과학계에서는 인체증강 기술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정의한다. 우량한 인간이 태어나도록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이보그처럼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까지 포함한다.


 줄기세포로 정자와 난자 만들기도유전자 수준에서 우량한 인간을 선택적으로 탄생시키는 기술은 이미 현실화됐다. 가장 보편화된 기술은 시험관 아기 시술에서 널리 쓰이는 착상전 유전자진단(PGD)이다. 초기 배아 단계에 유전적 결함을 진단해 문제가 없는 배아를 골라 자궁에 착상시키는 것이다. 어차피 시험관 아기 시술에서는 여러 수정란 중 우량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므로 사회적으로 별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태아의 유전자 구성을 인공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또 하나의 인공적인 개입은 세포질 이식술(cytoplasmic transfer)이다. 건강한 여성의 난자세포에서 세포질을 채취하여 산모의 난자세포에 주입하는 것이다. 원래는 세포질 속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서 개발된 기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목적보다는 시험관 아기 성공률을 높인다는 막연한 기대로 선호된다고 한다. 세포질 속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핵처럼 유전자를 갖고 있다. 세포질 이식술로 탄생한 아기는 엄마, 아빠 외에 다른 사람의 유전자도 갖게 된다는 점 때문에 윤리적인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유전공학 기술은 더욱 도전적인 인체증강 기술을 추구하고 있다. 바로 인공 생식세포(artificial gametes) 기술이다.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인공적으로 정자와 난자를 만든다는 것이다. 최근 유명해 진 유전자가위기술을 이용하여 정자와 난자 속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다. 이 기술은 동물실험까지는 성공했지만 아직 인간에게 적용되었다는 보고는 없다. 가까운 미래에 이 기술이 보편화된다면 2002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같은 상황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독일 멀리뛰기 선수인 마르쿠스 렘은 사고로 잃은 오른쪽 다리에 스프링 의족을 착용했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기를 희망했으나,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스프링 의족이 경기력 향상과 무관하다는 것을 선수 스스로가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육 늘리고 싶은 보디빌더들 약물 유혹인체증강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능력향상약물(PED)이라고 불리는 약물 개발로도 표출된다. 우람한 몸매를 과시하는 보디빌더 중에는 근육세포의 생성을 촉진하는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 그런 약물이 워낙 남용되는 폐해가 있어서, 자연적인 운동만으로 근육을 늘리자는 캠페인이 나올 정도다. 다국적 제약회사인 머크사에서 개발을 시작하여 현재는 임상시험 중인 오스타린이라는 약물이 한 예다. 이 약물은 노인이나 암환자의 근육감소증을 완화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하지만 쉽게 근육을 늘리고 싶은 보디빌더에게는 유혹이 될 수 있다. 일시적으로 혈액량을 늘려주는 약물도 있다. 마라톤이나 사이클처럼 일시적으로 많은 양의 산소공급이 필요한 경우에는 혈액량 자체를 늘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일시적으로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각성제류의 약물은 사격이나 양궁 같은 운동에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또는 정반대로 스트레스에 둔감해지도록 하는 진정제류의 약물이 평정심을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심지어 뇌의 신경전달회로를 직접적으로 자극해서 기억력을 향상시키거나 인지능력을 증강시킨다고 주장하는 약물들이 개발 중에 있다. 이런 계통의 기술 중 가장 위협적인 것은 유전자도핑기술이다. 원하는 신체 기능을 증강시킬 목적으로 유전자 자체를 몸속에 주입한다. 예를 들어 ACE나 ACTN3와 같은 유전자가 활성화되면 지구력이 증가하거나 근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분자생물학적 근거가 있다. 원하는 유전자를 바이러스에 삽입하여 사람에게 감염시키면, 그 유전자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이런 일련의 시도들은 과학적으로는 놀라운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사용목적에 따라서 커다란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약품 허가 과정에서 정상적인 사용에 대한 안전성은 검증되겠지만, 인간의 이기심은 남용이나 오용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여전히 위험하다. 특히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들이 사용하면, 선수 건강에 대한 위협은 물론 공정성 시비로 비화된다. 국제사회는 세계반도핑기구를 설립하고 이런 약물의 사용에 대해서 엄격히 통제하기 시작했다.


 전기나 엔진으로 구동하는 피스톤 부착영화 ‘아이언맨’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동력형 외골격(exoskeleton) 기술은 가장 멋있게 보이는 인체증강 기술이다. 미국 레이시언사의 XOS2, 일본 사이버다인사의 HAL 등이 대표적인 상용 시스템인데, 우리나라에서도 KAIST·한양대·한국생산기술연구원 등에서 개발하고 있다. 스스로는 기껏해야 20kg 쌀 포대도 겨우 들 수 있는데, 전기나 엔진으로 구동하는 피스톤을 몸에 붙여서 200kg 화물도 거뜬히 들 수 있다. 동력형 외골격 기술은 사람과 기계의 상호작용 방식에 따라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단계는 인체의 동작을 근육 신경신호를 통해 감지하여 기계장치를 구동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사람의 뇌와 기계장치를 직접 연결해, 생각만으로 기계장치를 구동하는 것이다. 201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한 데카암 시스템은 첫 번째 유형에 속한다. 하지만 근육신경신호 자체가 손상되면 사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소위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이 필요한데 아직은 실험실 수준이다. 비동력형 외골격 기술은 이미 널리 쓰이는 인체증강기술 중 하나다. 런던 올림픽 1600m 계주 결승전을 통해 전 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남아프리카공화국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선수는 스프링처럼 생긴 의족을 양다리에 착용했다. 세계 최고기록에 육박하는 멀리뛰기 실력을 가진 독일 마르쿠스 렘 선수는 오른쪽 다리에 스프링 의족을 착용한다.


인공장기 기술 역시 인체증강 기술의 범주에 속한다. 청각기능을 상실한 사람을 위해 초소형 컴퓨터가 음파를 전기신호로 바꾸어 청각신경에 전달하는 인공 와우각 시스템은 이미 상용화됐다. 시각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인공 눈 기술 역시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인공 심장, 인공 폐, 인공 간, 인공 난소, 인공 췌장 등 중요한 인체 장기는 모두 인공장기 개발대상이 되고 있다. 전자기계공학적인 방법으로 인공장기를 만들고자 시도하는 그룹도 있고, 줄기세포를 이용한 생물학적 방법으로 인공장기를 만들고자 시도하는 그룹도 있다. 아직까지는 손상된 장기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다. 그 성능 역시 실제 장기에 많이 못 미치는 상황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인체 장기 본래의 능력보다 뛰어난 성능을 가진 인공장기의 출현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한 번만 들숨을 쉬면 여러 시간동안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 인공 폐, 어떤 독성 물질도 거뜬히 무력화시키는 인공 간 등 환상적인 인체증강이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무시할 만한 노화’로 바꾸면 수명 늘어인체증강의 최고봉은 ‘불로장생’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실제로 불로장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생물이 존재한다. 이번 달에 과학저널 사이언스지에 400살 이상으로 추정되는 그린란드 상어가 보고돼 주목을 끌었다. 척추동물 중에서는 최고령으로 인정된다. 알다브라 자이언트 거북은 수명을 250년으로 본다. 식물 수명은 훨씬 길다. 성경에서 이름을 따서 므두셀라 트리로 불리는 캘리포니아산 강털소나무의 나이는 5000살 정도로 추정된다. 과학계에서는 ‘불로장생’이라는 용어 대신 ‘무시할만한 노화’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핵 유전자의 변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의 변이, 불필요한 세포물질 축적 등 노화 현상을 일곱 가지 생리현상으로 분류한다. 어떤 생물종에서 그런 현상이 ‘무시할 만한’ 수준으로 생긴다면 수명이 매우 길어진다. 사람의 경우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7가지 생리현상에서 모두 ‘무시할 만한 노화’ 대신 ‘눈에 띄는 노화’가 일어난다. 만약 7가지 모두 혹은 최소한 일부라도 ‘무시할 만한 노화’로 바꿀 수 있다면 사람의 수명도 늘릴 수 있다고 기대한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기술도 있다. 바로 뇌 백업과 신체 복제기술이다. 뇌에 저장된 모든 기억을 백업했다가, 복제한 건강한 신체의 뇌에 이식하는 것이다. 늙고 병든 몸은 사라져도, 뇌 백업과 신체 복제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은 영원히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공상과학처럼 들린다. 하지만, 신체 복제는 동물실험 수준이지만 오래전에 성공했다. 뇌 백업이 문제다. 특정한 기억만 선택적으로 회상시키거나 지우는 전기생리학적 기술이 실험실에서 성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 역시 불가능한 얘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코다의 설명을 찬찬히 듣고 있던 김길동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곰곰이 생각하니 이미 인체 기능 중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모호하게 되고 있었다. 심미성도 인체 기능이라고 간주하면 성형을 통해 인체증강을 실현한 사람이 거리에 산재해 있다. 치과 보철술의 발달로 썩지 않는 치아를 착용한 사람도 많다. 관절 부상으로 인공관절이나 인공인대를 시술한 사람도 많다. 만약 어떤 스포츠 선수가 고의로 특수제작한 인공관절이나 인공인대를 시술한 후 운동능력을 향상시킨다면? 계속 새로운 약물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세계반도핑기구는 늘 바쁘다. 새로운 약물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사례가 포착되면 그것을 금지약물에 추가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해야 한다.


유전자 도핑의 경우는 현재 사용하는 생화학적 기술로는 검출이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개발도 하고 있다. 사실 반도핑 규정은 약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선수의 안전이나 스포츠의 공정성에 반하는 물질이나 방법 모두 포괄적인 반도핑의 대상으로 돼 있다. 피스토리우스나 렘의 사례처럼 약물이외의 인체증강 기술이 이미 공정성 시비의 대상이 되었다. 코다는 김길동씨에게 “과학기술의 발전 때문에 바뀌게 될 사회적 변화를 미리 예측해서 준비하지 않으면, 사회가 기술발전 속도에 뒤처질지도 모른다”고 일침한다.


이도헌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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