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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2016] 호기심 대장 전인지, 전용 숙소 대신 선수촌 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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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 배지 저 주시면 안 돼요?”

다양한 문화 경험하고 싶어
근대 5종 김선우와 룸메이트
외국선수 볼 때마다 먼저 대화
“각국에서 받은 배지가 새 보물”
1라운드 바람 거의 없고 화창
외신 “타수 줄이기 좋은 날씨”

17일 리우 바하 다 치주카에 위치한 올림픽 골프 코스 내 연습장.

올림픽 여자골프 개막을 앞두고 샷을 가다듬던 전인지(22·하이트)는 연습을 멈춘 뒤 일본인 기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일본인 기자가 AD카드(출입증)에 달고 있던 배지를 눈여겨 본 전인지는 두 손을 내밀며 애원하듯 말했다. 잠시 뒤 일본인 기자가 흔쾌히 건네자 전인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양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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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지는 올림픽 선수촌에서 타 종목 선수와 지낸다. 외국 선수들과 배지를 교환하는 등 올림픽을 즐기고 있다.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지만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골프에서 메달을 따겠다는 각오다. 17일 리우 바하 올림픽 골프 코스에서 개막한 여자골프 첫날 1번 홀에서 티샷하는 전인지.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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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지의 별명은 ‘덤보’다. 어린 시절에는 남의 말을 잘 들어 ‘팔랑귀’라고 불렸지만 웃는 모습이 귀엽고 호기심이 많아 ‘덤보’란 별명을 얻었다.

‘호기심 천국’ 전인지는 뭐든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14일 리우에 입성한 전인지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선수촌에 여장을 풀었다. 박인비(28·KB금융그룹)·양희영(27·PNS)·김세영(23·미래에셋) 등은 대한골프협회가 마련한 숙소에 머물렀지만 그는 다른 종목 선수들과 함께 지내는 선수촌을 택했다.

전인지는 “근대 5종 선수인 김선우와 숙소를 함께 쓰고 있다. 처음 만난 다른 종목 선수들이 잘 아는 사이처럼 인사해주는 게 기분 좋다. 선수촌 내 자판기 용품은 모두 무료다.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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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지가 올림픽 1라운드 출전에 앞서 일본 기자로부터 얻은 배지를 들고 웃고 있다. [리우=이지연 기자]

전인지는 사흘 만에 벌써 20개가 넘는 배지를 모았다. 선수촌 내에서 마주치는 선수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교환을 요청한다고 했다. 전인지는 “2년 전 일본 선수에게서 나노블럭을 선물받은 뒤 블럭 맞추기가 취미가 됐다. 집에 나노블럭을 꽤 많이 수집해놨는데 배지도 귀중한 보물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에게 올림픽은 ‘꿈을 향한 도전의 무대’다. 전인지는 아마추어 시절이던 2011년 국가대표로 활동했지만 아시안게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전인지는 “태극마크가 달린 티셔츠를 입은 뒤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쳐다봤다. 가슴이 벅차 올랐다. 지카 바이러스나 불안한 치안 등 여러 장애물을 하나씩 극복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고 말했다.

전인지의 몸 상태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시즌 초부터 컨디션 난조에 시달리면서 몸의 밸런스가 깨졌다. 샷감도 흐트러져 왼쪽으로 당겨치는 엉뚱한 샷이 나올 때도 있다. 전인지는 몸 상태를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리기 위해 리우 입성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늦췄다. 그러나 전인지는 “프로 통산 12번의 우승 가운데 샷이 좋았던 적은 두세 번밖에 없었다. 샷이 날카롭지 않지만 몸 상태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17일 오후 7시52분(현지 시간 오전 7시52분)에 경기를 시작해 첫 홀(파5)에서 1m가 채 안되는 버디를 잡았다. 우승 뒤 어떤 세리머니를 하겠냐는 질문에 전인지는 “세리 머니는 아무도 모른다. 세리 언니 지갑을 아직 못 봤다. 아마 달러? 원화?”라며 위트있는 답변을 했다.

1라운드는 바람이 거의 없이 화창한 가운데 경기가 치러졌다. 올림픽 전문매체 어라운드 더 링스의 브라이언 피넬리 기자는 “타수를 줄이기 위한 환상적인 날씨”라고 했다. 개막전 연습 라운드에서 기분 좋은 홀인원을 기록했던 박인비는 오후 9시 3분에 첫 티샷을 날렸다.

여자 골프 1라운드가 시작되면서 한국 드림팀도 올림픽 모드에 돌입했다. 대한골프협회가 마련한 숙소에서 머물렀던 박인비와 김세영은 각각 따로 마련한 숙소로 돌아가 대회를 치르기로 했다. 김세영은 “올 시즌 LPGA투어에 출전할 때마다 ‘이 대회가 올림픽’이라는 생각으로 경기를 치렀다. 이번엔 일반 대회처럼 평상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메달을 딴다면 펜싱 박상영 선수처럼 멋진 세리머니를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리우=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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