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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젊음이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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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호 29면

덥다. 제아무리 머리를 빡빡 깎고 모시옷을 곱게 입어도 더위를 이길 재간이 없다. 이런 더위가 최고조에 달하던 날, 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름캠프에 강연을 다녀왔다. 몇 발작만 걸어도 숨이 콱콱 막히는 열기 속에서도 지치지 않는 젊음을 만났다. 청년들의 환호와 웃음은 마치 ‘이깟 더위쯤 우리에겐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는 것 같았다. 불꽃처럼 빛나는 청춘, 그들은 내게 환희 그 자체였다.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간 후 청년들의 질문을 받았다. 쪽지에 적어 칠판 가득 붙여놓은 것을 한 장 한 장 떼어가며 답하는 시간이었다. 그 가운데 정말 재밌는 사연 하나를 발견했다. 웃지 않을 수 없는 그 사연인 즉, “스님, 사귀는 오빠랑 어디까지 갈까요”였다.


질문지를 읽자 청년들이 다들 뒤집어지게 웃고 난리가 났다. 아…어쩌란 말이냐. 이런 질문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뭐라 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혼자 사는 스님한테 너무하네. 하하하.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하세요.” 빨개진 얼굴로 답했다. 내 말이 우스웠던지 뒤로 넘어가게 웃던 청년들 사이로 ‘그냥 알아서 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아무튼 이 문제는 스님이 화두로 삼고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볼게요. 다음에 또 이런 질문이 들어오면 명쾌하게 답할 수 있게요.”


이렇게 말해놓고 나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감정으로부터의 자유, 육체의 자유까지. 그리고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강조하며 끓는 젊음을 정돈했다. 청년들이 자기제어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돌아오는 길에도 그 질문이 떠올라 혼자 키득키득 웃음이 났다. 그러나 한편 청년들이 스스로 결정하기에 어쩌면 이건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순수하게 공부만 하다가 막 대학교 1·2학년이 된 학생이라면 두려울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요즘 만난 청년들 중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어려서부터 학원 다니고, 고등학교·대학교·학과까지 쭉 정해놓은 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에 여념 없는 청년들도 있지만, 막상 젊음을 누릴 자유와 시간이 주어지자 주체 못하는 청년들도 허다하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나이 들어도 정신적으로 부모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절에는 며칠 후면 우란분절(백중)이다. ‘우란분절’은 나쁜 업(業)을 지어 저승에서 고통받는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 공양 올린 목련존자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한 불교식 어버이날인 셈이다. 조상을 위한다지만 막상 절에 오는 분들은 대개 자식을 위해 기도한다. 하지만 진정 자식을 생각한다면 아이에 대한 집착을 먼저 내려놓는 게 맞지 않을까. 그들 스스로 자기 인생을 찾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자녀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원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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