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그림] 칸딘스키 '인상 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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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1월 1일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는 프란츠 마르크,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 등 신예술가동맹 회원들과 함께 연주회에 참석했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1874~1951)의 '현악 4중주'와 '3개의 피아노 소품 '이 무대에 올랐다. 무조(無調)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콘서트'라는 부제를 단 칸딘스키의'인상 Ⅲ'은 이날 연주를 듣고 난 느낌을 담은 그림이다. 이날 음악회 덕분에 칸딘스키는 점점 색채와 형태의 '내적 음향'에 주목하는 추상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쇤베르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예술적 교감을 나누게 되었다.

그림 왼쪽 아랫부분에서 시작되는 노란색의 대각선은 그랜드 피아노를 연상케 하는 검은색과 만난다. 쇤베르크 콘서트에 등장했던 악기다. 피아노 앞엔 피아니스트가 앉아 있고 그 뒤에는 몇몇 청중의 모습이 눈에 띈다. 빨간색과 흰색 기둥이 여기에 리듬감을 더해준다.

눈에 피로감을 주는 노란색은 쇤베르크의 음악에 등장하는 불협화음처럼 고통스러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귀에 거슬리는 트럼펫의 고음(高音)처럼 멀리 뻗어나간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검은색은 낙조(落照)이후의 허공처럼 미래도 희망도 없는, 영원한 침묵의 소리를 담고 있다.

칸딘스키는 노란색은 트럼펫의 팡파르, 오렌지색은 비올라 또는 따뜻한 알토의 목소리, 빨강은 튜바 또는 큰북, 비올렛은 바순, 파랑은 첼로 또는 더블베이스, 오르간, 녹색은 바이올린의 명상적인 지속음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어제'의 불협화음이 '오늘'의 화음(하모니)이 될 수 있다며'불협화의 해방'을 들고 나온 쇤베르크에게 흠뻑 빠진 칸딘스키. 그에게 쇤베르크의 음악은 새로운 미술의 창조적 지평과 혁명적 변화의 방향을 제시해준 '계시'였다. 추상미술이'정신적인 것'에 봉사하는 순수 예술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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