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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DC, 만화는 훌륭한데 영화는 왜 이래?" 원작과 비교해 짚어본 수어사이드 스쿼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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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기대를 모았던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원제 Suicide Squad, 8월 3일 개봉,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뚜껑이 열렸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DC만의 다양한 악당 캐릭터를 만나볼 수 있어 반갑지만, 스토리나 캐릭터 면에서는 많이 아쉽다. 지난 3월 24일 개봉한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잭 스나이더 감독, 이하 ‘배트맨 대 슈퍼맨’)부터 시작된 실망감은 이제 DC 확장 유니버스(DC Extended Universe·DCEU) 전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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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사이드 스쿼드 [중앙포토]


| 풍부한 역사의 강점, 왜 버렸나



먼저 ‘수어사이드 스쿼드’ 원작 만화의 강점부터 살펴보자. 원래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와 싸우던 특공대였다. 1950년대 말 냉전 시대 당시, 히어로들은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로 몰려 활동을 접었다. 그들을 대신해 지구를 지킨 팀이 바로 수어사이드 스쿼드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전 지구적으로 메타휴먼(수퍼 파워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배척 분위기가 강해지고, 히어로들의 활동이 법적으로 중단되는 상황을 맞자 정보 기관에서 자구책으로 결성한 팀이기도 하다.

긴 역사를 보면 히어로들을 감시하고 보완한다는 점에서 마블의 국제평화유지기구 쉴드(S.H.I.E.L.D.)와 유사한 점도 많고, 그만큼 DC 세계관에서 사용 가능한 잠재력이 다양한 팀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 주지 않는다. 아만다 월러(비올라 데이비스) 국장이 왜 악당들을 모으는지, 왜 지금 이 팀이 결성돼야 하는지에 대한 마땅한 설명이 없다.

마블과 비교해 보면 DC 영화의 문제점이 더욱 명확해진다. 만화 『엑스맨』 시리즈만 해도 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 수용소, 쿠바 미사일 위기 등 역사적 현장들을 보여 준다. 올해 4월 27일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앤서니 루소·조 루소 감독)의 원작 『시빌 워』는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논란을 일으킨 개인 정보 유출 사건, 국가 기관의 감청 문제 등을 각 히어로들의 입장에서 살펴봤다.

만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아이언맨』도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었다. 마블은 히어로들이 계속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 관계된다고 이야기한다. DC도 이야기 면에선 마블에 뒤지 않는다. 오히려 만화적으로 보면 역사와 사회 문제들을 마블보다 더 잘 살렸다. 『시빌 워』와 비슷한 시기엔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와 『인피닛 크라이시스』라는 이름으로 수퍼 히어로 공동체와 도덕 원칙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비극을 다뤘다. 여성 및 흑인 인권, 인종 차별, 마약, 참전 군인들이 겪는 트라우마 등 당시 미국 사회가 겪는 문제들도 적극적으로 들여다봤다.

1980년대에는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 『다크나이트 리턴즈』 『왓치맨』 등의 걸작들을 통해 그간 절대적인 선(善)이자, 우러러볼 사회의 모범으로 그려졌던 히어로들의 추악하고 더러운 면을 부각시키며 수퍼 히어로 만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DC는 이렇게 풍부한 밑천을 갖고 있으면서도, 명작들의 명장면을 재현하는 것 외엔 영화를 통해 그것이 지금 우리와 어떤 식으로 관계가 있는지 말하지 못한다.

그 시대에 맞는 수퍼 히어로는 동시대 사람들이 가진 고민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만화에서의 시도와 달리, DC 영화들은 정작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 잊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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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틸. 영화사 제공


| 매력과 개성 잃은 캐릭터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상영 시간의 대부분을 캐릭터 소개로 할애한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야기보다 캐릭터를 더욱 기대한 영화였다. 원작 만화의 악당 캐릭터들은 저마다 결함이 뚜렷하고 역할도 명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먼저 릭 플래그(조엘 킨너먼) 대령은 팀을 이끄는 전략가다. 융합되지 못하는 멤버들을 단호하게 지휘하면서도 포용하는 인물인데, 영화에서는 그저 단호하기만 하다. 데드샷(윌 스미스)은 ‘딸바보’로 그려 놓은 탓에 악당 같지가 않다. 원작 만화에서도 ‘딸바보’ 스토리라인이 있지만, 오히려 비중은 폭력 아버지에게 시달리며 자란 소년이 아버지를 죽이려다 실수로 친형을 죽인 후, ‘다신 실수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명사수 악당으로 살아간다는 쪽이 더 높다.

가장 매력적이어야 할 마녀 인챈트리스(카라 델레바인)는 만화에서 엘 디아블로(제이 헤르난데즈)와 마찬가지로 막강한 화력을 지녔으나 통제 불능한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인챈트리스를 메인 악역으로 만들면서 화력을 엘 디아블로에게 몽땅 쥐어 준다. 제대로 된 능력을 잃었으니, 인챈트리스가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특히 원작 만화에서는 임무 수행 중 반드시 한 명이 죽는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컨셉트의 원조가 되는 영화 ‘특공대작전’(1967,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부터 이어 온 전통과도 같다. 그러나 영화 초반 슬립낫(애덤 비치)이 허무하게 죽는 건 임팩트가 많이 떨어진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슈퍼맨(헨리 카빌)도 과감하게 죽여 버린 DC가 왜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는 그런 용단을 내리지 못했는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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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사이드 스쿼드 할리퀸 [중앙포토]

무엇보다 기대를 모았던 건 조커(자레드 레토)와 할리퀸(마고 로비)이다. 그들의 이름을 보고 영화관을 찾은 팬들이 많을 텐데 매력이 떨어진다. 둘 다 비주얼은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강렬하지만 대사는 밋밋하다. 문제는 대본이다.

원작 만화에서 조커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쾌하고, 우스꽝스럽고, 언제나 세상의 모든 비밀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당당하다. 악행을 저지를 때에도 그만의 합당한 논리와 근사한 핑계를 대는 통에 미워할 수만은 없는 캐릭터다. 그러나 이 영화의 조커는 다른 악당들을 그 자리에 대신 가져다 놓아도 차이를 못 느낄 정도다. 히스 레저의 조커가 쩝쩝대며 읊어 대던 명대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측 불허의 기발하고 ‘똘끼’ 충만한, 마치 음악을 듣는 듯 리듬감 있고 경쾌하면서도 광기가 살아 숨 쉬는 대사가 최소 한마디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할리퀸도 원작보다 단순하다. 범죄자의 심리를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할린 퀸젤 박사는 때론 고급스러운 용어를 스스럼없이 구사하다가도 천박한 욕을 내뱉고, 길가에 핀 꽃 한 송이에 감격하다가도 무참히 꺾고, 유기견 한 마리를 지키려고 목숨 걸다가도 잔혹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순수함과 혼돈이 결합된 캐릭터다. 그 매력은 차진 대사로 승화되는데, 마고 로비의 할리퀸엔 그게 잘 안 보인다.

조커와 할리퀸의 관계도 문제다. 원작 만화에서 할리퀸은 조커에게 너무나도 가혹하고 못된 괴롭힘을 당하지만 그에게 매달린다. 조커는 할리퀸을 자신과 똑같은 존재로 만들어 놓고서 아름답게 여기지도 않고, 결혼할 꿈 따윈 꾸지 않는다. 물론 영화는 반대다. 조커는 할리퀸을 최고의 짝으로 여기고, 할리퀸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지금 DC 영화는 중대한 위기에 봉착했다. 하루 빨리 단조로운 이야기와 캐릭터를 나열하는 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DC가 야심 차게 내놓을 ‘저스티스 리그’(2017년 11월 개봉 예정, 잭 스나이더 감독)도 실망감을 안기고 말 것이다. DC의 위대하고 웅장하며 신선한 세계관을 스크린에서 제대로 만나고 싶다. 제발 원작 만화가 갖고 있는 풍부한 강점들에 집중해 다음 타자인 ‘원더우먼’(2017년 6월 개봉 예정, 패티 젠킨스 감독)은 멋지게 나오기를.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관한 궁금증 3



1
할리퀸이 빠진 물통의 정체 조커는 배트맨에게 쫓기다 화학 약품 통에 빠져 얼굴과 머리 색이 변한다. 그의 얼굴이 웃는 모습으로 변한 것도 이 통에 빠졌기 때문. 영화에서는 마치 세례식처럼 할리 퀸 스스로 그 약품 통으로 뛰어들지만, 원작에서는 자신의 아픔을 느껴 보라며 조커가 할리를 강제로 떠밀어 던져 버린다(이 장면은 『킬링 조크』 『배트맨:제로 이어』 『할리퀸2』에 자세히 나온다).

2 조커와 할리퀸 애칭 할리퀸은 조커를 부를 때 ‘푸딩’이라는 애칭을 사용한다. 할리퀸 목걸이에도 ‘Pudding’이라 적혀 있다. 그렇다면 조커는 할리퀸을 뭐라고 부를까? ‘컵케이크’다.

3 엘 디아블로는 마법사인가 DC 세계관에는 3대 축이 있다. 하나는 슈퍼맨과 같은 외계 문명 기반의 초인, 또 하나는 배트맨 같이 초능력 없는 범죄 투사다. 세 번째는 마법의 능력을 사용해 어둠과 악령들과 싸우는 계열인데, 이 마법의 캐릭터들은 자타나, 인챈트리스, 존 콘스탄틴 등이 있다. 엘 디아블로도 마법 계열이다. 마블로 치자면 고스트라이더와 닥터 스트레인지라고 할 수 있다. 마블이 조심스럽고 차근히 확장해 나간 것과 다르게 DC는 단 두 편의 영화만으로 세계관의 3대 축을 모두 건드린 셈이 됐다.

글=이규원 그래픽 노블 전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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