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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극「오늘의 이야기」가 없다|최근의 공연작품 내용과 성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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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리 연극에「오늘의 이야기」가 없다.
요즘 공연되고있는 대부분의 연극들이 40∼50년전인 일제때에서부터 수백년전인 조선·고려·삼국시대 이야기까지로 거슬러 올라가 현실감각을 잃어버린채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올3월에 공연되는 20편의 연극중 창작극은 번역극과 맞먹는 10편. 1, 2월의 번역극 일색에서 크게 벗어나 양적으로는 증가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공연제목만 들어도 해묵은 냄새가 물씬 나는『인종자의 손』(국립극단) , 『변강쇠타령』 (민예극장) , 『강건너 너부실로』(여인극장) , 『그날이 오면』 (통일무대), 『님의 침묵』 (극단 마당) 등 대부분의 작품이 주체나 소재면에서 참신함을 찾을 수 없다.
85년 제9회 대한민국연극제 참가 8개 작품을 분석해보면 우리연극의 「과거지향성」은 더욱 확실히 드러난다.
『선각자여』 (극단 민중) 는 일제의 질곡기가 무대, 『검은새』 (극단 성좌)는 조선시대, 『쌀』 (극단 민예)은 일제침략 초기의 이야기를 각각 담고있다.
또한 『풍금소리』 (극단 여인) 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광산촌의 두노파 이야기,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극단 현대) 는 동경대진재때의 한국인학살사건을 다루고있다.
『필부의 꿈』 (극단 목화)은 시공간을 초월한 작품이고『제3스튜디오』 (극단 가교) 나 『하늘만큼 먼나라』 (극단 산울림) 만이 오늘에 접근하고 있으나 이 작품들도 이미 몇해전 TV드라머를 통해 다 본 것들이다.
또한 85년에 공연된 창작극 40여편중 (연극협회 비회원극단 포함)오늘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청소년교육문제를 다룬『방황하는 별들』(동랑청소년극단) 과 종교문제를 다룬『하나님 비상예요』 (극단 완자무늬)등 불과 4∼5편에 머물고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돌이키는 작품조차도『한씨연대기』 (극단 연우무대),『카덴자』 (극단 쎄실) 등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의 작품은 작가의 주장이나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냥 몇십년, 몇백년전의 이야기로만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이런 현상에 대해 극작가 최인석씨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현상은 안일한 창작의욕을 가졌던 우리 극작가들과 연극인 스스로가 먼저 책임지고 부끄러워해야할 문제』라고 전제한뒤 『그러나 현재 극작가들이 모두 소재의 제한과 표현의 한계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것은 연극대본에 대한 검열 강화 때문이며 올 1, 2월에 공륜심사에 걸려 4편이나 무대화되지 못한 것이 바로 그예』라고 말했다.
연출가 채윤일 씨 (극단 쎄실대표)도『연습을 거의 끝내고 극장대관까지 마친 신작창작극이 대본심의에 걸러 몇해 전에 막이 올랐던 해묵은 작품으로 대치됐다』며 『행정적 장치를 의식해서인지 극단측에서도 새작품을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평론가 김방옥씨는 오늘의 삶이 무대화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일단 신진 극작가 부재로 인한 신선한 시각의 막힘과 책임감이 부여되는 현실을 기피하는 기성 극작가의 안일한 작품태도를 외면상 이유로 꼽을수 있다』 면서『그러나 현실 비판적 시선을 작품 속에서 전혀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 극작가의 예술세계를 좌절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이며 이것이 바로 최근 드러난 실험정신의 결여와 창작무대의 허약함으로 직결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헌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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