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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 종말 동남아 각 국에 충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아시아적 장기독재 체제의 상징처럼 돼왔던 「마르코스」 정권의 종말은 동남아 각 국의 정치상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독재의 전형처럼 돼왔던 개발정책, 빈부의 격차 심화에 따른 불만고조, 카리스마적 독재자의 노쇠화 등 필리핀 정변의 배경을 이루었던 정황들은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도 보이는 일반적 현상이다.
「마르코스」 정권처럼 장기집권을 기록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64),싱가포르의 이광요 수상(63) 등도 60년대부터 정권을 유지해 오고 있다. 태국은 60년대부터 민간정부 형태를 띠고 있지만 군부가 실권을 쥐고 통치를 계속하고 있다.
베트남전쟁 이후 동남아 지역은 비교적 안정된 발전을 해왔다. 그것은 미-중공의 화해가 이 지역에 외적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세계의 쟁점이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아프가니스탄·중동 등으로 옮겨짐으로써 상대적으로 안정을 보여온 이 지역은 개발과 성장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이 지역 지도자들은 질서와 개발이라는 대의명분으로 민주화와 부의 분배·인권존중 등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눌러왔다. 그것은 「마르코스」의 필리핀이나 「수하르토」의 인도네시아, 이광요의 싱가포르, 「네윈」(74) 의 버마 등 모두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 가운데 필리핀은 2년 반 전 「아키노」의 암살사건을 계기로 독재의 말기적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적·경제적 측면에서 개발 우선 정책의 모순이 드러나고 여기에 「마르코스」의 건강악화는 「마르코스」 시대의 종말을 재촉했다.
장기집권자가 노쇠하게되면 독재정권의 특징인 후계자 문제는 내부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정권의 불안정을 부채질한다.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는 더욱 거세게 되고 국내혼란-경제악화-탄압강화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20년에 걸친 「수하르토」의 집권으로 경제개발 노선을 고수해온 인도네시아에도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또 계속된 유가하락으로 성장률이 2∼3%로 떨어졌다. 지난 84년 9월에 발생한 빈민들의 폭동은 그 동안 누적된 불만의 표현이었다.
그 뒤로 계속된 폭파·방화사건도 그러한 맥락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비록 군부의 강경 대처로 표면적 안정을 되찾기는 했지만 내년의 국회의원 선거와 88년 「수하르토」대통령 하야 예정일을 앞둔 군부 내 후계자 다툼과 함께 인도네시아의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아시아의 우등생으로 자부해 오던 싱가포르 경제도 기적의 성장에 종지부를 찍고 지난해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절대적 지도력을 발휘해 오던 이광요 수상에게도 국민의 불만이 양성화되기 시작하며, 65세 되는 88년 은퇴할 것을 선언했으나 장남 이현룡 국무상(33)의 후계 문제를 둘러싸고 파란이 예상된다.
과거 50년 동안 군부 쿠데타를 15번이나 겪은 태국도 불안정한 정치체질을 노정 시키고 있다.
「네윈」이 24년간이나 통치를 계속해온 버마도 엄격한 쇄국주의로 국민의 불만이 누적돼왔고 군부는 분열돼 있다.
동남아 국가들의 이런 현상을 반 「수하르토」 정치인인 인도네시아의 「브라타나타」 전 외상이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그는 「마르코스」의 실각이 여러 나라의 장기집권자들에게 경종이 될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하고 인도네시아의 경우를 들어 『「마르코스」와 「수하르토」는 같은 시대에 권력을 잡았고 호랑이를 탔다가 내리지 못하고 호랑이에게 희생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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