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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적대’ 끌어안은 브라질 ‘환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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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호 1 면

리우 올림픽 개막식은 브라질의 빈민가 ‘파벨라’ 지역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파벨라의 쪽방을 상징하는 격자들 속에서 흥겨운 춤이 이어지고, 브라질 특유의 무질서 속의 질서를 표현한다.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새로운 세상(New World)’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리우 올림픽이 6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7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이날 마라카낭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식은 색깔과 몸짓의 향연이었다. 그 위에 음악이 있었고 그 바탕에는 리듬이 있었다. 브라질에서 음악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리듬을 통한 공존. 그것이 지구 반대편 리우에서 전해져 온 메시지였다.


브라질 사람들에게 리듬의 기원은 무엇인가. 끊임없는 파도다. 눈부신 포말을 일으키며 다가섰다 물러가기를 영원히 반복하는 코파카바나 해변의 물결이다. 남미 최초의 올림픽 개막식 전체를 관장하는 것은 바로 그 파도였다. 그렇게 신대륙의 축제는 물에서 시작한다. 항해의 모티브가 거기에 겹친다.


이른바 아프로-브라질리안 문화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북쪽 바이아 지방의 사우바도르에서는 새해가 시작되면 바다의 여신 ‘예만자(Iemanja)’를 기리는 축제를 한다. 매해 2월 2일에는 수많은 사람이 새벽까지 밤을 새운 후 예만자의 신전에 바친 봉헌물을 어부가 탄 배에 실어 먼바다로 내보낸다. 이것을 ‘칸돔블레’라고 부른다. 대규모 거리 축제가 그 뒤를 잇는다. 예만자의 후예들은 흥겨운 파도의 가르침에 따라 삼바를 춘다.


파도의 이미지에 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바로 지우베르투 지우(Gilberto Gil)였다. 한때 청년문화의 기수였던 그가 고색창연한 목소리로 등장하는 것을 보니 왠지 가슴 한편이 뜨거워진다. 지금은 물러난 룰라 대통령 시절에 문화부 장관까지 지낸 전설적인 가수다. 그가 부른 노래는 ‘아켈 아브라쿠(Aquele Abraco)’. 1969년에 발표된 노래다. ‘내가 포옹한 사람’이라는 뜻의 이 노래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생명을 잉태하는 물처럼 축제에 참가한 지구촌 형제들을 따뜻하게 감싼다. 초대와 환대의 노래다.


다인종 브라질 문화의 핵심리듬 통한 공존 메시지 담아원시림에 달린 인류의 미래특유의 음악·몸짓으로 표현


이렇게 물에서 시작된 축제는 이제 숲으로 이어진다. 푸른 물은 녹색의 숲으로 색깔이 전환된다. 물은 땅에 스미고 비옥한 열대의 대지는 거대한 아마존의 숲을 낳는다. 아마존은 참을 수 없이 생동하는 수많은 생명의 모태다. 아마존에는 4만 종의 식물과 1300종의 새와 430종의 양서류, 3000종의 물고기들이 산다. 그리고 90만 명의 원주민이 그들과 함께 산다. 사람이 동물 위에 군림하지 않고 공존한다. 이와 같은 아마존의 존재야말로 브라질의 미래, 인류의 미래다.


발전과 개발로 인류의 성공을 가늠하던 시대가 20세기였다면 공존과 조화에 인간종의 목숨이 달려 있는 시대가 21세기다. 미래는 오히려 원시림 속에 있다. 그래서 브라질은 인류의 미래다. 이번 올림픽이 강조하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국적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난민들도 함께하는 올림픽이다. 강대국의 능력 있는 선수들만 돋보이는 올림픽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 없는 나라의 선수들도 함께하는 올림픽이다. 그들 모두, 거대한 아마존 안에 존재하는 미약한 생명체들일 뿐이다. 그래서 녹색의 올림픽은 ‘빈자의 올림픽’이기도 하다. 그것은 총감독을 맡은 페르난두 메이렐르스의 철학과도 연결돼 있다. 그가 만든 영화 ‘신들의 도시’를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신들의 도시란 리우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달동네를 일컫는 말이다.


녹색의 아마존이 지나가면 이제 세계인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전 세계 다섯 색깔 민족들의 이주를 상징하는 대목이 등장하는 것. 그 모든 사람이 브라질로 이주하니 브라질은 그야말로 작은 지구다. 이 대목에서 다시 브라질 문화 특유의 ‘환대(hospitality)’를 되새겨 본다. 환대는 브라질 문화의 핵심 중 핵심이다. 올림픽 기의 다섯 색깔이 지구의 다섯 대륙을 상징한다지만 이 다섯 색깔은 브라질이라는 거대한 인종 전시장에도 존재한다. 특히 아프리카에 기원을 둔 ‘프레투(preto)’와 프레투보다는 조금 더 하얀 ‘파르두(pardo)’를 합하면 전체 인구의 반에 해당하는 1억 명이 된다. 수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고 문화적으로도 무시당하지 않는다. 그들과 더불어 원주민·유럽인·아시아인, 이렇게 다섯 색깔의 사람들이 비교적 조화롭게 살아가는 나라가 브라질이다. 그들 모두 파도에서 비롯된 활기찬 삼바 리듬 속에서 하나가 된다. 그것이 브라질의 카니발이다.

리듬 속 고양된 조화 '진정한 열대'와 '거짓 열대'대조 보이며 끝 맺어
자,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니 무엇이 만들어지나? 바로 대도시다. 리우는 한때 남미의 뉴욕이었다. 이 대도시는 수많은 사람의 희망이 새겨지는 곳. 그 대목에서 모던하고 도시적인 시크 부아르키의 음악이 나온다. 이탈리아 피가 섞여 있는 그의 음악은 언제 들어도 독특하다. 브라질스러운 리듬과 유럽적인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코드의 변화도 미묘하다. 대도시의 세련된 이미지다.

개막식 축하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세계적인 모델 지젤 번천의 등장이었다. 번천은 브라질 보사노바의 대표곡 ‘이파네마의 소녀’에 맞춰 무대에 나타나 올림픽 개막을 축하했다.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대도시엔 언제나 그늘이 있다. 색깔은 점점 화려해지고 수퍼 모델 지젤 번천이 톰 조빔의 ‘이파네마의 소녀’를 배경으로 마지막 캣워크를 한 다음, 그 그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음악이 격렬해진다. 이제 주인공은 바로 빈민들이다. 빈민가를 가리키는 ‘파벨라’의 음악이 등장한다. 루드밀라의 ‘행복한 랩’은 삼바와 힙합과 리듬앤드블루스의 모든 장르를 혼합한 브라질식 힙합이다. 핑크색 달이 뜬 달동네 춤꾼의 흥겨움을 돋운다. 이제부터 진정한 음악의 향연이다. 엘자 수아레스가 나오고 제카 파고징뉴가 등장한다. 이 전설적인 뮤지션을 개막식에서 보다니!


파벨라의 쪽방들을 상징하는 작은 격자들 속에서 흥겨운 춤들이 이어지고, 거기에 매핑된 원색의 영상들은 브라질 사람들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무질서 속의 질서를 표현한다. 축제가 시작될 때 치기 시작했던 파도가 계속 이어진다.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줄줄이 나오는 뮤지션들은 모두 브라질 음악의 대가들. 특히 조르지 벤의 등장도 인상적이었다. 그가 부른 노래 ‘열대의 어버이(Pais Tropical)’에 이르러서야 빨간색이 온 무대를 뒤덮는다.


자, 드디어 ‘열대’라는 개념이 나오는 것이다. 관객들도 참가자들도 열대의 열기에 들떠 춤을 춘다. 함께하는 춤. 삼바의 축제. 브라질에는 ‘삼바 스쿨’이라는 독특한 단체가 있다. 매해 열리는 카니발에는 삼바 스쿨이 단체전을 벌인다. 삼바 스쿨의 핵심은 바투카다, 즉 브라질 특유의 타악 음악이다. 그 기원에 아프로-브라질리안 음악과 문화가 있다. 성대한 잔치에는 아프로적인 리듬의 힘들이 빠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개막식의 절정. 삼바 스쿨을 상징하는 깃발과 군무, 리듬, 모든 것이 하나되는 법열의 상태가 지향된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 바로 ‘열대’라는 말이다. 브라질에서 ‘열대’는 독특한 개념이다. 그것은 그냥 더운 날씨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이 대목에서 맨 처음 노래한 지우베르투 지우를 다시 언급해야 한다. 그는 1960년대 말 카에타누 벨로주(Caetano Veloso)와 더불어 이른바 ‘트로피칼리아(열대주의)’를 이끌었다. 트로피칼리아는 독특한 형태의 브라질 청년문화운동으로 확장되는데, 당시 독재정권 치하에서 검열의 고통을 겪던 젊은이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았다. 우리로 치면 유신 독재 시절 신중현이나 한대수의 음악이 당시의 ‘통기타 청바지 세대’에게 전폭적인 성원을 받은 것과 비슷할 것이다. 브라질 비주류 문화의 기수가 리우 올림픽의 서두를 장식하는 것을 보니 왠지 감격스러웠다.


브라질에서 ‘열대’는 모든 것이 뒤섞이는 ‘고양된 조화’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사랑의 기쁨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의 느낌과도 통한다. 착란과 광기까지도 포용하는 삼바축제는 바로 이 ‘열대’의 상태를 지향한다. 개막식은 브라질식 열대, 즉 리듬 속에서 고양된 조화를 이루는 진정한 열대와 그 대척점에 있는 거짓 열대와의 대조를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이 대목에서 어떤 의미로는 리우 올림픽이 21세기적 올림픽의 출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올림픽은 힘을 보여주는 잔치가 돼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일산화탄소로 뒤덮인 거짓 열기, 죽음의 열기를 보여줄 뿐이다. 삼바의 축제가 지향하는 ‘열기’, 즉 열대는 생명을 탄생시키고 기쁨을 나누는 조화로운 상태를 말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붉은 빛의 ‘열대’는 거짓 열기, 거짓 세계화로 지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돈의 열대’가 만들어낸 위기에 경고장을 보낸다. 드디어 선수들이 입장한다. 역시 삼바 스쿨의 입장 형식을 가져오고 있다. 깃발을 든 여인과 그를 호위하는 메스트레 살라(mestre sala). 지구가 아마존 때문에 숨을 쉬고 있다. 아마존은 지구의 메스트레 살라라는 생각까지 든다. 리듬 속에서 하나 되어 조화롭게 사는 세상을 꿈꿔 본다. 사실 상황은 브라질조차 좋지 않다. 현재 대통령 호세프 지우마는 탄핵 소송 중이고 대행하는 미셰우 테메르는 야유를 받는다. 심지어 입장하는 선수 중에는 손바닥에 ‘테메르 아웃’이라고 써서 페이스북에 올린 이도 있다. 어떤 면에서 브라질은 최악이다. 그러나 브라질은 잘 해낼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리듬이다. 리듬 속에서 공존의 고리를 찾으면 위기는 사라진다.


성기완


관계기사 3~5, 16~17, 19, 28면


성기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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