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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감금돼도 법원이 못 빼내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쇠창살이 설치된 아파트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20대 여성의 사연이 영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영국 일간지 웨일즈온라인에 따르면, 영국 스완지 출신인 아미나 알제프리(21)라는 여성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아파트에 갇혀 있다.

영국과 사우디 이중국적
남성과 키스했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아파트에 감금해
"딸을 도와주려는 것" 변명

사우디와 영국 이중국적인 아미나는 아버지를 따라 지난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로 이주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버지 무함마드(60)는 아미나를 아파트에 가두고 창문에 쇠창살 등 잠금장치를 설치했다. 딸이 밖으로 구호 요청을 할 수 없도록 방음장치까지 했다. 이유는 아미나가 남성과 키스를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에 아미나가 영국 런던고법 가사부에 소송을 내면서 사상 초유의 ‘사우디 감금 재판’이 진행됐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런던고법에서 열린 재판에 두 사람은 재판에 참석하지 않고 변호인들만 참석했다. 딸 아미나 측은 헨리 세트라이트 변호사와 마이클 그래이션 변호사가, 아버지 무함마드 측은 마커스 스콧맨더슨 변호사가 대리했다.

이날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아버지 무함마드 측 주장이었다. 스콧맨더슨 변호사는 “무함마드는 딸의 영국행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하지도 않고, 오히려 영국으로 돌아오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면서 “아버지는 딸을 돕고자 하는 것”이라는 궤변을 내놓았다. 이달 3일 재판부는 “영국 시민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면서 무함마드에게 딸을 다음달 11일까지 영국으로 돌려보내고 항공료를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무함마드는 재판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전망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중국적을 허가하지 않아 내국법상 아미나를 자국인으로 인정하는데다, 영국과 사우디 사이에 사법 공조 협정도 없어 영국의 판결이 사우디에서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우디는 극단적인 보수 이슬람 문화로, 여성의 ‘보호’는 남성 친척에게 부여된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여성은 남성 친척과 동반하지 않고 이동이 불가능하며, 운전도 할 수 없다.

윌리엄 파테이 전 주수단영국대사는 BBC라디오 웨일스와의 인터뷰에서 ”문화 충돌과 연관된 사건으로 해결이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무함마드 알제퍼리는 제다 소재 압둘아지즈국왕대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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