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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경주막판 「늙은 말」에 걸었다|미·소의 비사태 대응 불 르마탱지의 분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파리=주원상 특파원】
필리핀정국이 급변하고 있다. 파리의 좌파계 신문 르마탱은 24일 『마닐라의「브루터스」들』이라는 해설기사를 통해 몰락직전의 「마르토스」독재체제를 둘러싼 미국과 소련의 대응을 분석했다.
이 신문은 특히 필리핀군부장성의 움직임에 주시하고 이들 장성들이 민주주의 덕목의 본보기는 아니라고 우려했다.
다음은 이 기사의 전문이다.
흔히 독재체제의 몰락과정에서는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그간의 예로 보아 새로 태동하는 민주주의의 요람편에 바짝 다가서는 측이 생기는가 하면 빈사상태에 이른 독재체제의 장례식에 동참하는 무리도 나타난다.
「마르코스」대통령이 마지막 남은 권력에 가까스로 의지해 국민과 교회, 그리고 「필리핀비극」의 마지막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군부에까지 맞서고있는 이 시점에서도 이런 두 종류의 「요정」들이 출현해 뜻밖의 역할들을 하고있다.
미국이 「마르코스」전복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소련이 공산주의자들의 대량 학살자이기도 한 이 독재자를 두둔하고 나선 것이 우선 그 하나다. 모스크바에서는 국가적 「신앙」이라는 것이 정치적 파렴치 앞에 무색하기 마련이고 이같은 태도변화를 따지려는 사람도 없이 모두가 그저 침묵할 따름이다.
반대로 오랜 세월 「마르코스」와 관계를 가졌던 미국은 필리핀의 이 늙은 지도자가 이제 보호받을 수도 없고 존중될 수도 없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이같은 유별난 놀음은 제쳐두더라도 정치논리는 분명하다. 아이티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대세에 역행하지 않고 그 흐름에 따르기로 했으며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돼버린 피후견인을 저버렸다.
다른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소련은 『미국의 꼭두각시』 『폭군』 『파시스트』 라고 줄곧 매도해왔던 인물을 느닷없이 치켜세우면서 이데올로기를 팽개치고 이제부터는 자신들이 들어설 자리가 생겼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철저한 반공주의 폭군이 소련과 원만한 관계-전략적으로 말해서-를 유지하게될 미래를 머리 속에 그렸었다.
아무래도 소련은 경주의 막판에 늙은 말에 올라탐으로써 실수를 한 것이 틀림없는 것 같고 미국은 「코리·아키노」편에 섬으로써 확실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상황에서 필리핀의 운명이 오직 한가지 요인, 필리핀국민들의 손에만 달려있는게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은 「마르코스」독재의 와해를 촉진하는 입장을 선택(늦은) 했다.
그리고 워싱턴은 항복하기를 거부하는 독재자(아이티의 「베이비·독」의 경우에선 한결 쉬웠다)를 지켜 보면서 그들 우방의 군부장성들을 움직이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제 자기네 늙은 「시저」를 칼로 찌르려고하는 필리핀군부의 「브루터스」들은, 그러나 민주주의적 덕목의 본보기들이 아니다.
이렇게 모두가 아니면 거의가 「마르코스」에 대해 사람들이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해했으리라고 믿는다.
「마르코스」는 물러나야한다. 그리고 그가 곧 퇴진하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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