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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손」대통령의 과제|민주 필리핀의 재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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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족벌 장기 독재의 질곡 속에서 정치불안, 경제파탄, 사회혼란으로 진통을 거듭해온 필리핀이 드디어 자유의 신시대를 맞게 됐다.
한때 동남아의 민주주의 모범국이었던 이 나라를 독재와 파탄으로 몰아 넣었던「마르코스」일가와 그 측근 일당이 25일 민권에 굴복, 망명길에 올랐다.
「마르코스」정부의 붕괴는 독재에 대한 자유의 승리일 뿐 아니라 정통성을 상실한 정권은 그것이 장기화·독재화할수록 그 종말은 더욱 가혹하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번 필리핀 정변의 수훈은 민주세력의 끊임없는 저항과 이에 대한 반「마르코스」개혁파 군부세력과 미국정부의 동조·지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필리핀 전국은 자유민의 승리감에 들떠있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리핀은 이제부터 더욱 어려운 시련과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 숱한 난제의 성공적 수행은「마르코스」타도보다 더 어렵고도 중요한 과제일 것 같다.
그 첫째가 누적된 독재와 비정의 잔재를 뿌리뽑고 새로운 민주화를 실현해 나가는 일이다.
아직도 필리핀의 행정조직과 경제분야에 침투해있는「마르코스」족벌의 청산 없이는 민주화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잔재청산 작업은 군부에 대해 더욱 철저히 가해져야 한다.
필리핀 군부야말로「마르코스」독재와 부패를 떠받쳐온 최대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정변의 마지막 순간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한「엔릴레」국방상이나「라모스」장군도 한때는 독재체제에 영합했던 인물들이다.
필리핀 군부는 참신한 개혁파 장교들에 의해 충성스러운 비정치적 민주군대로 개편돼야 할 것이다.
다음은 치안의 확보다. 필리핀 치안을 위협하는 최대의 요인은 역시 공산게릴라인 1만2천명 규모의 신인민군(NPA)이다.
필리핀 정국이 제대로 정착돼 있지 않은 지금 저들은 세력확장에 혈안이 돼 있을 것이다.
필리핀 군부는 빨리 개혁을 끝내고 신인민군의 위협으로부터 정권을 보호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경제의 재건이다. 필리핀의 경제는「마르코스」족벌들에 의해 침탈되어 구조적으로 병들어 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1인당 GNP는 82년 현재 7백96달러였다. 그러나 84년의 경제성장이 마이너스 5.4%, 85년에는 마이너스 4%로 후퇴하여 지금은 그보다 훨씬 떨어져 있다.
인구5천5백만명중 노동인구의 15%가 완전실업상태이고 반실업율은 45%로 나타나 있다.
외채는 작년말 현재 2백55억5천만 달러이고 그중 70억 달러는「마르코스」족벌이 빌어 쓴 것이라 한다.
새로 등장한 필리핀 최초의 여성정권인「코라손」대통령이 이같은 과제를 제대로 해낼는지 지극히 우려된다. 그의 정치적 경륜이 전무한 상태인데다 정치기반도 아직은 취약한 형편이다.
그러나「코라손」정부의 최대의 부담은 필리핀 국민의 과잉기대다. 국민이 너무 성급하게 결과를 기대하여 결국은 정권의 불안정과 독재의 등장을 가져온 실례를 우리는 전후의 후진국 정치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이제는 필리핀 국민이 차분한 마음을 되찾고 군부가 정치에서 손을 떼는 것이「코라손」 정부를 도와 필리핀의 정치·경제·사회를 재건하는 최선의 길이다.
필리핀 사태는 많은 정치적인 개도국에 여러 가지 시준를 주게될 것이다. 필리핀의 장래는 그들 많은 나라의 주시대상이 돼 있다. 「코라손」신정부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재건에 성공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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