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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스트리트저널] ⑤ 일회용 면도기로 1조원을 버는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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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것도 아닌 아이디어로 큰 돈을 버는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나는 창업을 하고 싶어도 종잣돈이 없다? 영업이나 마케팅이 얼마나 어려운데, 내가 뛰어들었으면 잘 안됐을 거다?

최근 글로벌 소비재 기업 유니레버에 10억 달러(1조1160억원)를 받고 매각된 달러쉐이브클럽의 사례는 그런 생각에 브레이크를 겁니다. 2011년 파티에서 만난 마이클 두빈과 마크 레빈이 창업한 달러쉐이브클럽은 1회용 면도기ㆍ면도날을 집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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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쉐이브클럽 홈페이지

털이 많아서 전기 면도기는 별로였는지, 수동 면도기와 면도날을 쓰는 이들은 한 달에 몇십 달러씩 면도에 지출하는 게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회원 가입을 하고 3달러(배송비 포함) 정도만 내면 면도기 하나에 면도날 5개를 보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면도기 시장은 최신 기능과 디자인을 표방한 질레트가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다국적 기업 프록터&갬블이 2005년 질레트를 570억 달러(63조2130억원)에 사들인 것만 봐도 질레트의 위상을 알 수 있습니다. 질레트는 정상급 스포츠 스타들을 TV 광고에 기용하는 등 홍보ㆍ마케팅에도 엄청난 돈을 썼습니다.

하지만 두빈은 MSNBC에서 디지털 프로듀서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창업 이듬해인 2012년 코믹한 홍보영상을 만든 뒤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이게 대박을 쳤습니다. (비속어 주의^^)

 <두빈이 대박을 친 유튜브 홍보영상>

2000만 뷰 이상을 기록하고 하루 새 1만2000여 건의 주문이 몰렸습니다. 달러쉐이브클럽의 웹사이트는 다운되고 두빈이 갖고 있던 면도기 재고는 6시간 만에 동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달러쉐이브클럽의 매출액은 2억4000만 달러(2662억원)로 치솟았습니다.

수요가 몰리자 벤처 투자 유치도 수월했습니다. 1억6000만 달러의 투자를 단숨에 확보했고, 시장 점유율도 8%까지 늘었습니다. 사업영역도 면도기 뿐 아니라 쉐이빙크림ㆍ물티슈까지 확대했습니다.

현재 달러쉐이브클럽의 회원은 300만 명을 넘는데 임직원은 190명에 불과합니다. 원래 면도기 사업을 하려면 공장을 짓고, 운송센터를 차리고, 영업망을 구축하고, 연구개발 조직을 만드는 게 기존의 상식입니다. 마케팅 전략과 예산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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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쉐이브클럽의 면도기 세트

달러쉐이브클럽은 이같은 과정을 확 줄였습니다. 면도기는 한국의 도루코에서 공급받고, 운송도 처음엔 직접 하다 켄터키의 한 운송회사에 외주를 줬습니다. 실제로 하는 일은 프로젝트 디자인과 고객 서비스 뿐 입니다. 이렇게 하니 거대 기업보다 고객의 니즈를 세세히 파악하고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달러쉐이브클럽의 성공 사례는 기존 기업과 창업을 꿈꾸는 사람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입니다. 달러쉐이브클럽의 관점에서 볼 때 질레트를 비롯한 기존의 거대 기업은 엄청난 자원과 돈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공짜로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면 될 걸 수억을 들여 스포츠 스타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게 그 예입니다.

창업 준비생에겐 희망을 줍니다. 달러쉐이브클럽보다 1년 먼저 창업한 와비 파커는 ‘안경은 안경점에 가서 써보고 사야 한다’는 선입견을 깨고 온라인 안경 프레임 판매업에 도전해 경이로운 성과를 거뒀습니다. 이제 이런 파괴적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은 예외가 아니라 대세가 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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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안경판매 스타트업 ‘와비 파커’

달러쉐이브클럽이 두려운 질레트는 특허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세계 공용 1회용 면도기에 무슨 큰 특허 이슈가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소송이 질레트의 질투심만 드러내고 종결될 거라고 예상합니다.

모든 창업자가 달러쉐이브클럽과 같은 성공을 이룰 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기업에 취직해서 임원이 되는 게 출세하는 거라고 여기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걸 보여줍니다. 앞으로 거대 기업은, 작지만 혁신적인 기업의 도전 속에서 고생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그래픽=김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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