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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마르코스 두둔 인상|비 선거전을 보는 미국태도에 변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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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당초「마르코스」대통령을 견제하며 그 국내정책을 비판하는 것 같던 미행정부의 태도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치열한 선거전 끝에 여야후보가 각기 승리를 주장하며 정국이 극도의 혼란상을 보이면서 자칫 큰 유혈사태가 벌어질 기미를 보이자「레이건」대통령은 양측의 자제를 촉구하며「마르코스」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있다.
미국의 1차적 목표는「스피크스」백악관대변인이 말한 것처럼『강력하고 안정된 우방』이므로 필리핀에 혼란이 빚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은 11일「레이건」대통령의 필리핀선거에 대한 첫 반응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선거부정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제 필리핀에 강력한 2개 정당 체제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선거결과가 나타나는 대로 두 정당의 상호협조에 의해 필리핀정부가 활성화되고 미국과 필리핀의 전통적인 우호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레이건」미 대통령은 이렇게 부정선거에 대한 시비로 소요가 끊이지 않는 필리핀의 국내사정과는 달리「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미국의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필리핀에 선거가 있을 때마다 직접·간접으로 개입해 왔고 특정후보들의 당락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주어왔다.
필리핀 독립후의 첫 대통령선거(1949년)에서「엘피디오·키리노」후보는 미국의 지원으로 일본과의 전쟁당시 대통령을 지냈던「삼세·라우렐」을 물리칠 수 있었다.
「코라손」여사의 러닝메이트「라우렐」부통령후보의 아버지이기도 한「삼세·라우렐」은 당시 전쟁보상금을 지급 받는 댓가로 미국에 유리하게 필리핀 헌법을 수정하는 것을 반대한 이유로 미국의 미움을 샀었다. 미국은「키리노」를 집권시킴으로써 필리핀이 경제적으로 미국에 완전히 의존하도록 만든「벨」통상 법을 얻어냈다.
53년「막사이사이」대「키리노」의 대통령 선거 때도 미국은 막강한 실력을 발휘했다. 미국은 부패가 만연된「키리노」정권을 쓰러뜨리기 위해 버스회사직원이던「막사이사이」를 국방상자리까지 끌어 올렸고 급기야는 야당 대통령후보로 내세워 친미정부를 세우는데 성공했다.
미국은 당시 여당이 대규모부정선거를 획책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여 이를 저지시키기 위해 NAMFREL(전국자유선거국민운동)이라는 민간단체를 결성, CIA를 통해 자금을 대고 조직배후조종을 맡도록 하여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필리핀선거에 개입하여 처음으로 패배의 쓴맛을 본 것은 69년「마르코스」재선 때.
미국이 당시「세르지오·오스베냐」후보를 적극 지원한 내막은 필리핀 국립대학「엘레노·니콜라스」교수의 저서『조작된 선거들』(Manuplated Elections)에 자세히 밝혀져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의 불화가 깊어진「마르코스」는 국내정치에 대한 미국의 입김을 봉쇄하기 위해 72년 계엄령 선포까지 하게됐고 그후 72년까지 한번도 미국방문을 하지 않았다.
미국은 필리핀이 갖는 군사적·경제적 비중 때문에 15년 동안이나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마르코스」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83년8월21일의「아키노」상원의원 살해사건이었다. 미국은 이를 계기로 필리핀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이 고조된 것을 놓치지 않고 강력한 압력을 가해「마르코스」를 조기선거의 마당으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미국이「마르코스」정권을 두둔할 수밖에 없는 것은 ▲69년 선거 때의 실패가 거듭될 경우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하고 ▲20년 독재가 쓰러진다 하더라도 그 뒤에 따라오게 될 위기를 외부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데다 ▲「마르코스」의 여건으로 보아 2당 체제를 갖춘 뒤의 정권교체도 멀지않아 달성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또 그들의 의도가 빗나가「마르코스」나「코라손」측에 의한 무질서가 확대되어 무정부상태로 사태가 악화되는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강구해 두었었다.
마닐라만에 머무르고 있는 제7함대의 기함인 블루리치와 미드웨이, 엔터프라이즈호 등 3척의 항모와 여기에 타고 있는 2만5천명의 병력이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미국은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보다는 부통령후보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국민의회에서의 당선자 발표결과가 이 같은 시나리오에 맞춰질는지는 모르지만 미국이 필리핀대통령 선거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만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김상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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