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F 의장, 사드 문제 언급 안한 이유 묻자

중앙일보

입력

 
남·북이 맞붙었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의 최종 결과물인 의장성명이 27일 발표됐다. 의장 성명은 예년보다 더 높은 강도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규탄하는 내용을 담았다.

26일 회의 종료 하루 만에 의장국 라오스가 공개한 의장성명은 “장관들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인 북한의 1월6일 핵실험, 2월7일 로켓 발사, 7월9일 탄도미사일 발사 등을 포함한 한반도의 현상황 전개에 우려를 공유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ARF 의장성명에서 북한의 도발 내용과 시기를 하나하나 열거한 것은 처음이다. ‘우려한다(concern)’는 표현도 지난해 의장성명에는 없었다.

또 “대부분의 장관은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270호를 포함한 모든 관련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고, 모든 관련 당사자가 평화적 한반도 비핵화의 추가적 진전을 위해 역내 평화 안보를 유지하고 6자회담의 조기 재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공통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난해에는 안보리 결의 준수와 관련, ‘준수를 요청한다(call on)’고 했지만, 올해는 ‘촉구한다(urge)’로 한층 강화됐다.

지난해 의장성명 문구에는 “장관들은 반생산적 행보를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문장이 있었다. 이는 북한 뿐 아니라 한국도 염두에 둔 문구로, 아세안 국가들 특유의 남북 등거리 외교 기조가 반영된 양비론적 문장이라고 정부는 해석했다. 하지만 올해는 이 문장이 통째로 빠졌다.

앞서 26일 개최된 ARF 외교장관회의에선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북한 이용호 외무상이 모두 참석해 의장 성명 수위를 두고 날선 신경전을 벌였다. 남·북 모두 아세안 국가들과의 양자회담 등을 갖는 등 장외전이 치열했다.

문구조율의 실무는 각국 차관보급에서 맡았다. 김형진 차관보는 지난 25일 열린 갈라만찬에서까지 알룬케오 키티콘 라오스 총리실장관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계속해서 북한의 추가 도발 우려를 강조하며 강한 경고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정부 당국자는 “문안이 잘 나왔느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지난해 내용인데, 개선점은 확실히 있고 미흡하다고 여겼던 부분은 오히려 삭제됐기 때문에 만족한다”며 “미국·일본·호주 등 동맹 및 우방국들과 견고한 공조를 이룬 것이 만족스러운 문안을 도출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우려했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는 의장성명에 언급되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북한 등 일부 국가가 집요하게 사드 배치를 비난하는 문구를 포함하려고 시도했지만, 우리가 양자 접촉, 문안 교섭을 통해 반영되지 않도록 했다. 사드 배치는 한·미의 공동결정이었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이 거의 한 대표단처럼 이 문제에 대해 같이 입장을 개진했다”고 설명했다. ‘사드를 문안에 넣으려고 한 국가에 중국도 포함되나’는 질문에는 “그 부분은 말씀드리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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