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주5일제 입법 속도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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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주5일제 입법이 10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여야 모두 대선에서 주5일제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노사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추진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법안 심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산업현장에서는 주5일제를 둘러싼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가 지난 15일 산별중앙교섭을 통해 기존임금의 저하 없는 주5일제 실시에 합의했으나, 일부 사업장이 이 합의에 반대하고 나서서 파장이 일고 있다.

또한 현대자동차는 주5일제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지금까지도 파업이 지속되고 있다. 우려되는 사실은 입법이 지연될 경우 주5일제를 둘러싼 산업현장에서의 갈등이 앞으로도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노와 사를 위해서, 그리고 국민경제를 위해서 바람직한 선택이 될 것인가? 혹자는 지금도 주5일제 실시 자체를 반대한다.

그러나 주5일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돼 버렸다. 그리고 주5일제는 단순히 세계에서 가장 긴 근로시간을 줄여 근로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주5일제가 정말로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국민경제의 후퇴를 가져온다면 오히려 근로자를 위해서도 절대로 실시돼서는 안될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실업의 증가와 근로조건의 저하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앞서간 나라의 경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주5일제를 합리적으로 시행하면 노사공영은 물론 국가발전의 새로운 에너지를 확보함으로써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의 체계적인 시간관리와 조직혁신, 노동의 질 개선, 문화.여가.고부가가치 신산업의 성장,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촉진함으로써 국민경제의 신성장과 질적 성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시장원리에 철저한 논자들은 주5일제를 기업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5일제를 기업에 맡길 경우 기업 사정에 따라 신축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강한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부터 시행될 것이며, 노사 합의의 내용은 금속노조의 경우와 같이 기존의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월차휴가, 유급 생리휴가, 짧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근로기준법상의 과보호 또는 경직적인 조항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의 주5일제가 장차 전 사회적으로 확산된다면 기업경영과 국민경제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현재 추진 중인 법개정 방식은 설사 기업규모별.업종별 시행시기에 차이를 둔다 하더라도 법적 경직성과 강제성이 따르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상의 불합리한 조항들을 함께 개선함으로써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인력활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부의 입법안에 대해 강한 노조의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 실시 요구에 시달리고 있는 일부 대기업과 경제단체가 찬성입장으로 돌아섰지만, 중소기업과 노동계는 여전히 반대입장이다. 특히 양 노총은 정부입법안이 통과될 경우 총파업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노동계가 주5일제 시행과 함께 근로기준법상의 기득권을 양보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들은 개발독재시대의 노동기본권에 대한 탄압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노동기본권은 당당히 요구하되, 노동기본권 탄압의 반대급부인 근로조건에 대한 과보호는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운동이 국민에게서 신뢰받고 정책결정에서 보다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도 입법안 처리에 분명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 노사 합의를 추진하되 시한을 정해야 한다. 만약 시한 내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무작정 합의를 기다리기보다 국민의 입장에서 노사상생과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법개정을 위한 결단을 하루빨리 내려야 할 것이다. 이것이 노사가 함께 번영하고 경제가 발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李原德(한국노동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