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학<문학평론가·동국대교수>|황순원·유익서·이제하씨의 최근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삶은 갈등의 구조다. 소설은 삶을 대상으로 한다. 소설이 갈등속에서 구성된다고 함은 당연한 일이다. 소설의 이같은 속성을 한국의 작가들은 짐짓 외면하려 하는데서 한국소설의 현주소는 아직도 이야기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갈등을 이야기로 수용하면서 감동의 지평을 열어줄때 소설은 제 모습을 갖고 우리앞에 문학으로 우뚝 설 것이다.
가령 황순원의 『땅울림』(세계의 문학·겨울호)은 이같은 논의를 매우 타당하게 만들어준다. 그것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강제징용에 의해 사할린에 정착한 사람들, 동족상잔의 피비린내를 아직도 씻어내지 못한채 남과 북에서 분단의 아픔을 새겨가는
사람들의 한 많은 이야기다.
그같은 갈등의 구조를, 그러나 황순원은 금기서화를 병치하여 화해를 모색하려한다.
그 화해는 화자인 「나」를 통해 너무 진하게 표백됨으로써 작가의 삶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로 소설을 주저앉게 만든다.
갈등을 갈등으로 수용, 이야기로 제시하고 그 갈등을 통해 감동의 자락을 펼쳐줬다면 독자는 감동의 늪에 함몰될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갈등을 화해의 전제아래 바라보려 하며 갈등만으로 삶을 해석하려 하지않는 한국작가의 속성을 매우 분명히 드러내주는 보기에 해당되는 것이라 파악할수 있게된다.
유익서의 『고통의 뿌리』(동서문학 1월호)도 화해를 전제한 갈등의 형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닥터 한과 박성희 부인과 미스 정의 고통을 고통으로 제시하는데서 작가는 멈췄어야만 한다. 닥터 한에게서 분단에 의한 이산의 아픔을, 박성희 부인에게서 당대 한국사회의 학원문제를, 미스 정에게서 물질만능의 폐해를, 그래서 작가는 자꾸 독자에게 설명하려 든다.
그러므로 작가는 심각한 모습으로 현학적인 포즈까지 취하게도 된다. 결국 닥터 한의 방송 출연으로 인한 감상적인 화해로서 끝맺게 하는 이 소설의 대단원에서 소설을 문제해결의 구조가 아니라 문제제기의 구조임을 작가에게 거듭 말하고 싶어지게 된다. 결국 이것은 화해를 암암리에 전제한 갈등의 파악에 결정적 원인이 개재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된다.
이제하의 『강설』 (문학사상1월호)은 그러나 갈등을 가능한 한 갈등으로 엮어가려 한다. 이 소설의 재미는 대부분 이같은 장치에서 비롯되고 있다.
만화가 어린이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출판사 김사장의 행각속에서 독자가 알수 있게 할 뿐 설명하려 않는다.
이같은 강한 흡인력 때문에『강설』은 오늘날 한국 출판계 실상의 한부분을 폭로하는 듯한 강한 리얼리티를 느끼게도 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갈등을 화해의 전제없이 이야기로 제시하려했던 곳에서 얻게되는 감동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일인칭시점으로 서술되는 한계의 울타리는 때로 화해를 갈등구조에서 완벽하게 분리하는 것을 차단시키게도 된다.
황순원의 느긋하지만 치밀하게 구성하는 장인다운 대가풍의 솜씨, 유익서의 끈질긴 문체,이제하의 대상을 자기화 하는 변용의 미학등은 이야기의 단계를 감동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한국소설의 가능성을 엿볼수 있게 하여 많은 부분 우리의 실망을 감소시켜 주기는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