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김두우가 본 정치 세상] 강재섭과 손학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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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한동안 허탈감에 빠져 있던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요즘 모이면 "차기 대선주자에 누가 적당하냐"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런 희망마저 없으면 자신을 지탱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 정권의 미숙한 국정운영 능력이 이런 논의 시기를 앞당겼다. 최병렬 대표의 '인큐베이터론'도 그래서 나왔다.

*** 둘 다 '차기' 의욕

강재섭 의원과 손학규 경기지사도 거론 대상에 포함돼 있다.

지난주 두 사람을 각각 만났다. 두 사람 모두 공개적으로 표현은 삼가고 있지만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이런 열망을 감추진 않았다.

두 사람의 경력은 화려하다. 孫지사는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박사 출신이다. 재야운동에 깊이 관여했으며,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다 김영삼 정권 때 정계에 입문해 신한국당 대변인과 복지부장관을 지냈다.

姜의원은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검사 시절 안기부와 청와대에서 근무했고, 13대에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들어선 이래 당 대변인과 원내총무, 최고위원을 지냈다. 나이도 姜의원이 55세, 孫지사는 56세로 비교적 젊다.

자신들의 이미지에 대해 물어봤다. 姜의원은 "정치부패에 물들지 않았으며, 균형감각을 갖고 있는 안정감 있는 인물이란 게 나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인 것 같다"며 "정치적 목소리가 뚜렷하지 않으며 결단력이 약하다는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孫지사는 "깨끗하고 개혁적이며 정책분야에 식견을 갖고 있지만, 신중하고 친화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과정에서도 두 사람의 장.단점은 분명히 드러났다. 姜의원은 특유의 '인간적' 친밀성을 보이며 "그 정도로 하자, 나를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방어막을 쳤다.

그러다 정책과 노선에서 색깔과 목소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하자 정색을 했다. 노태우 정권 당시 북방정책에 깊이 개입한 사실 등을 설명했다.

그는 "대안없이 멱살이나 잡고 선명성을 내세워야 야당 지도자냐" "과학기술과 경제에 역점을 두는 선진국형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등의 얘기를 했지만 답변 수준은 원론에 머물렀다.

孫지사에겐 "만난 지 두시간이 지났지만 사람을 끌어들이는 맛이 부족하다"고 자극했다. 이 때부터 목소리의 톤이 확 올라갔다. "주한미군 재배치가 미국의 사정 때문에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이 정권의 태도는 지나치게 안이하다"며 "미국의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줄이기 위해 경기지사인 내가 '시간이라도 늦춰달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열변을 토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등에 대한 비판도 한시간여 계속됐다. 그렇지만 대화 도중 곳곳에서 "정치인은 말을 아껴야 하는데…"라는 등의 조심스러운 말로 김을 뺐다.

*** 견제.제휴 반복할 듯

물론 이들이 차기 후보 논의에서 앞서 있는 건 아니다. 이제 출발점에 섰을 뿐이다. 姜의원은 아들의 병역문제, 孫지사는 굿모닝시티 사건과 관련한 구설을 극복해야 한다. 孫지사는 진보, 姜의원은 보수란 이미지가 있다. 강점이면서 약점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어느 한 쪽이 당장 탈락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두 사람 모두 동의했다. 두 사람이 상호 견제와 제휴를 해 나갈지 지켜보는 것은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다.

김두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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