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왕이, 한 비행기로 와 한 호텔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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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 북한 신임 외무상이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출발해 쿤밍을 경유한 동방항공편으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리는 라오스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같은 비행기를 탔다. [AP=뉴시스]

남북 외교 수장이 모두 참석한 ‘북핵 외교전’이 24일 라오스에서 개막했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관련 외교장관회의와 그 행사의 하나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외교전이 펼쳐질 무대다.

라오스 ARF서 북핵외교전 시작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해 첫 일정으로 한·캄보디아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했다.

북한 이용호 외무상도 오후 중국 과 같은 비행기편으로 라오스에 도착했다. 베이징에서 출발해 쿤밍을 경유하는 동방항공 노선을 타고 6시간 30분 동안 함께 비행했다.

윤 장관은 24일 밤 왕이 부장과 회담했다. 한·미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 이후 첫 공식회담이었다. 한국 측은 북핵 문제에 있어서의 공조에 방점을 뒀지만, 왕 부장은 사드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모두발언에서 “한국이 신뢰의 기초를 훼손시켰다”, “유감스럽다”며 공격적 발언으로 회담을 시작했다. 윤 장관을 향해 “한국 측이 양국 관계 수호를 위해 어떤 실질적 행동을 취할지 윤 장관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한다”고도 했다. 윤 장관은 이에 “양국관계에 여러 도전이 있을 수 있지만, 극복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회담이 비공개로 전환된 뒤에도 중국 측의 반발은 계속됐다고 한다. 윤 장관은 사드가 제3국을 지향하지 않는 방어용이라는 정부의 기존 입장을 다시 강조했다. 또 북한의 추가 핵실험 우려 등을 강조했다.

윤 장관은 25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과도 회담할 계획이다.

현지에선 이용호가 왕이 부장과 만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이용호와 왕 부장은 같은 호텔에 머무를 예정이다. 왕이 부장은 도착 직후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용호를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알릴 때까지 기다려달라 ”며 회담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용호는 같은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북·중은 ARF에서 만날 때 대부분 외교장관회담을 했지만 지난해에는 하지 않았다. 윤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일일이 코멘트할 필요는 없지만, 북한과 만나는 나라의 외교관들이 북핵 위협을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는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강하고 분명하게 전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용호는 특히 26일 열리는 ARF에서 공식 발언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 인정 등을 요구할 것으로 외교부는 판단하고 있다. 25일 라오스가 주최하는 환영만찬과 26일 ARF에는 윤 장관과 이용호가 모두 참석한다.

이번 행사가 이용호에겐 외무상으로서의 국제무대 데뷔전이다. 이용호는 지난 5월 7차 노동당대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 자리에 오르면서 북한 외교라인의 중심으로 자리를 굳혔다.

비엔티안=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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