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F '북핵 전쟁' 개막…5차 핵실험 저지 총력외교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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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24일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막을 올렸다. 남북 외교 수장이 모두 참석해 맞붙는 유일한 지역 행사라 한국 정부에겐 ‘북핵 전쟁’이 벌어지는 전장이나 다름없다.

윤병세 장관은 이날 오후 2시30분(한국 시간) 비엔티안에 도착한다. 북한 이용호 외무상은 두시간 뒤인 4시 30분 입국한다.

윤 장관은 이날 베트남 외교장관과의 환담을 시작으로 비엔티안에 머무르는 26일까지 사흘 동안 양자회담 및 환담 12개, 다자회담 4개를 소화한다. 이례적이라고 할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라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특히 아세안 국가 10개국 장관 중 6명과 따로 만난다.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브루나이, 싱가포르, 필리핀 등(회담순서)이다.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태국·베트남 외교장관과 하는 한·메콩 외교장관회의(24일 오후), 한·아세안 외교장관회의(25일 오전) 등도 예정돼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한국과 북한 사이에서 등거리외교를 고수해온 아세안 국가들과 접촉면을 늘려 대북 압박에 있어 협력을 구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정부 당국자는 전했다. 이 당국자는 “아세안 국가 외교장관 중 신임 장관이 많아 상견례 의미도 있지만, 북한의 추가 도발 저지를 위해 북한 대 국제사회 구도를 공고히 하려면 아세안 국가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장관은 존 케리 미 국무장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과도 24일 만날 예정이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도 추진중이다.

특히 정부는 오는 27일 6·25 전쟁 정전협정 체결일을 계기로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계획이다. 윤병세 장관은 전날 출국하기 직전 기자들과 만나 “북한에게 안보리 결의를 철저히 이행하라는 메시지를 참가국 모든 나라들, 대부분의 외교장관들이 발신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북핵 전쟁의 승패는 26일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가 끝난 뒤 채택할 의장성명에서 판가름난다. 매해 발표되는 의장성명에는 늘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비판하는 이른바 ‘한반도 조항’이 포함된다. 아세안 회원국 중에는 북한에 우호적인 국가가 많은 데다 북 측 대표단이 직접 참석해 자신들의 입장을 피력하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포함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이례적으로 수위가 높은 북핵 비판이 나왔다. “우리는 탄도미사일 발사 등 최근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에 우려를 표한다.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6자회담에서 도출한 2005년 9·19 공동성명상 의무를 준수하길 촉구한다.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와 지속적 남북대화를 위해 필요한 조건을 어서 충족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complete and verifiable de-nuclearisation of the Korean Peninsula)와 통일을 달성할 수 있기를 촉구한다”는 조항이다. 북한이라고 지목한 것 자체가 전례가 드문 일이었고, 남북대화나 통일을 언급한 것도 처음이었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실험 등에 대한 우려가 작용한 결과였다.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로켓) 발사를 감행한 뒤 열리는 올해 ARF 의장성명에선 비판의 수위를 높일 수 있는 여건이지만, 변수는 북한과 깊은 우호 관계를 맺어온 라오스가 의장국이란 점이다. 의장성명의 문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의장국이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북한과 라오스는 1974년 수교했으며, 상대국에 공관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라오스는 아직도 공산혁명1세대가 정부 요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가 남다르다. 올 1월 열린 10차 전당대회에서 라오인민혁명당은 혁명 원로인 분냥 전 부통령을 당 서기장(서열1위)으로 선출했다. 통룬 전 부총리겸외교장관이 서열2위로 상승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의미 있는 북핵 비판 내용을 담는 데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라오스도 최근 경제발전 필요성 등으로 인해 한국과의 관계 발전을 원하는 실용적 시각을 보이고 있는 만큼 태도 변화를 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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