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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는 온통 "황색"물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필리핀 대통령 선거가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20년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마르코스」정부가 국민의 재 신임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암살된 고 「아키노」상원의원의 미망인 「코라손」여사가 이끄는 야당연합이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인지 세계의 이목이 필리핀에 쏠려 있다. 본사는 홍성호 사회부 차장을 현지에 급파, 막바지에 접어든 필리핀 선거전을 상세히 보도할 계획이다. 다음은 홍 특파원이 보내 온 제1신이다.
노란 옷차림, 건물의 노란벽, 차량의 안테나에서 휘날리는 노란 리번들…온통 황색물결이 수도 마닐라 거리를 뒤덮고 있다.
83년 고 「아키노」 상원의원이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반「마르코스」의 상징으로 내세운 이 색깔은 2월7일에 실시될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 「코라손」후보의 야당세가 대단한 열풍을 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야당 열풍에 불안을 느껴서일까, 여당 쪽에선 기상천외의 「민의」를 동원, 이에 대항하고 있다.
26일 낮 마닐라 시내에 또 한차례의 진기한 「마르코스」대통령후보 지지행렬이 등장했다. 술집 접대부와 나이트클럽 종사자들. 속옷이 비치는 드레스를 입은 여성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마르코스」대통령은 26일 「교실을 투표소로 이용하고 학생이 귀향하여 투표 할 수 있도록」 28일부터 2윌5일까지 각급 학교에 대한 임시휴교령을 내린다고 발표했다.
야당대변인의 말을 빌자면 이 조치는 『교수회의를 소집, 야당에 투표할 경우 일어날 결과에 대해 협박할지도 모르는 등 대규모 부정을 저지르려는』 『사악한 선거전략』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마닐라에서 지켜본 지금까지의 선거전은 여당의 「조직과 돈」으로 합쳐진 힘에 야당이 「새로운 국가건설」의 슬로건을, 내걸고 여론의 지지를 발판으로 삼아 도전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마르코스」-「톨렌티노」 후보측은 선거자금으로만 5억 달러(약4천5백억원)를 확보, 갖가지 선심공세로 득표에 나서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3천만명에 달하는 유권자 1인당 약1만5천 원씩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마르코스」는 이미 지난해 12월 선거참관인들로 선정된 각급 학교 교사들에게 3천8백만 페소(약19억원)의 크리스머스 특별보너스를 지급하는가하면 루손섬의 케손유세에서는 3억5천만 페소(약l백75억원)를 방출하여 항만 및 도로건설사업에 착수시키고 야당 우세 치역에서는 직접적인 금전살포를 하고있다.
또 전국4만2천 개의 바랑가이(최소단위의 행정조직·우리 나라의 리 또는 동에 해당)를 집결시킨 「마르코스」의 KBL 당 지방조직은 그의 부인 「이멜다」여사가 주로 맡아 바랑가이 책임자들을 부부동반으로 마닐라에 초청, 향응을 베풀고 선물을 나누어주는 등 여당
득표원이라고 할 수 있는 농촌지역에 착실하게 기반을 다지고있다.
이 같은 선심공세와는 별도로 반대파가 승리하는 경우공무원들을 대량 해고하겠다는 으름장이나 「코라손」이 집권하면 쿠데타가 일어나고 결국에 가서는 공산국가가 되고 말 것이라는 등 속출되는 표이탈을 저지하기 위한 위협수단도 등장하고 있다.
한편 「코라손·아키노」-「살바도르·.라우렐」후보측은 고 「아키노」 상원의원 지지세력과 UNIDO(민주야당연합)를 주축으로 하여 유세를 통한 「유권자와의 만남」에 주력하고 있다.
「코라손」-「라우렐」팀은 여당과의 정책대결 보다 「마르코스」정권의 병폐와 부패상을 폭로하고 변화를 바라는 국민여론을 부추기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야당측은 억압받는 민중의 해방을 내세우며 절대 권력이 빚어낸 기아와 빈곤, 부정과 부패로부터의 생존권 쟁취와 어느 한 정당,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보다 쓰러져 가는 국가의 운명을 구원해야 한다는 식으로 호소하고 있다.
야당에는 투표 날까지의 지지자 규합도 문제지만 투표·개표과정도 중요한 선거전략의 하나가 된다. 부정선거여부가 당락의 변수로 작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84년5월 국민회의(국회의원) 선거당시 여당이 불리했던 선거구에서는 개표가 아무런 이유 없이 2∼3주일씩이나 지연되기도 했다. 어느 마을에서는 전체 주민 수보다 더 많은 유권자가 등록되거나 한 유권자가 25군데나 중복 등록된 경우도 있었다.
야당측은 「코라손」-「라우렐」후보가 공명정대한 대결로 「마르코스」-「톨렌티노」후보와 맞선다면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할 것이라고 장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당측의 농간으로 적어도 1백만 표는 잃게 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유세장에서의 승리가 개표장까지 이어지기 어려운 선거풍토 때문에 필리핀정국의 관측통들조차도 이번 선거결과 예측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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