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마종기의 최근작|김광규<시인·한양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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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시집이라면 대개 여러 지면에 발표했던 작품들을 모아 출판하는 것이 우리 시단의 오랜 관례였다. l980년대에 접어들며 양대 계간지의 폐간과 소집단 운동의 확산에 따라 이른바 「신작시집」의 형태로 많은 시가 발표되었고 그 가운데는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한 것도 있었다.
얼마 전에 나온 앤돌러지 『앵무새의 혀』(김현 편·문학과지성사 간)도 신작시집의 좋은 예다. 고은으로부터 황지우에 이르기까지 현역 시인 24명의 작품 90여 편이 수록된 이 시집은 80년대 전반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우리의 문학이 직면한 상황을 여러모로 반영해주고 있다.
이 신작시집의 표제를 제공해 준 김명수의 시 『앵무새의 혀』는 4행으로 이루어전 짤막한 작품이다.
「앵무새 부리 속에 혓바닥을 보았느냐?
누가 길들이면 따라 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 아닌 말을 단 한 번 하고싶은
분홍빛 조붓한 작은 혀를 보았느냐?」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지배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정치적 강령일수도 있고, 사회적 유행어나 문학적 구호일 수도 있다. 그것을 따르거나 지키지 않으면 생존의 위협을 받게되므로 누구나 곁으로는 복종하면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저마다 가슴속에는 「그 목소리 아닌 말을 단 한번」이라도 해보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다.
이 당연한 욕망이 끝내 충족되지 못하면 그것은 아마 한이 되고 말 것이다. 남의 목소리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지 않고 자기의 말을 할 수 있는 사회를 이룩하려면 무엇보다도 각 개인의 조봇한 작은 혀가 존중되어야겠는데 오히려 이 작은 혀 마저 없애버리려는 시도가 우리 주변에 만연하고 있음을 이 시는 증언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있으면서도 불과 4행으로 완결되었다는 점에서 이 시는 돋보인다. 다의적 내용을 이처럼 짧은 형태로 압축할 수 있는 것은 시인의 기량임에 틀림없다. 요즘처럼 장시가 유행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같은 책에 실린 마종기의 「외국어시」 외 2편은 한반도 바깥의 현실을 노래한 작품들이다. 자기의 모국어가 외국어로 들리는 나라에 살면서도 끈질기게 모국어로 시를 쓰고 있는 이 시인은 폴란드어로 자작시를 외는 시인 「밀로즈」처럼 유랑민의 꿈을 꾸며 해결할 수 없는 겨울밤의 목마름에 시달린다. 이러한 고통은 그러나 애절한 외국 정취에 머무르지 않고 투철한 현실파악을 통하여 형상화된다.
「아프리카 한복판 가뭄에 굶어 죽은/수심만의 이디오피아 사람들」을 다룬 『아프리카의 갈대』에서 그는 「생각하는 갈대」의 공허한 이론과 「생각 없는 갈대」의 무모한 행동을 대비하면서 80년대의 「우리 갈대」와 연결시키는 폭넓은 시각을 보여준다. 자칫하면 외국 풍물 지나 생활수기가 되기 쉬운 재외한국문학의 한계를 탁월하게 극복한 작품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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