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에 묻혀 한평생…학계 연구붐 유도|배용덕씨와 증산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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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올해로 80년대도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돌이켜보면 80년대 전반기의 우리 문화는 그 다양한 내용과 치열한 양상으로 해서 우리 문화사의 독특한 위치를 점 할 것으로 보인다. 전환기에 서서 우리는 그 동안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땀흘려 챙기기를 계속해왔는가. 그 큰 흐름은 바로 「우리 속을 채우는 작업」이었다고 할수있을것이며 만만치 않은 기운은 이후 더욱 강렬해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 문화판의 나침반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가. 거기, 그 인간의 그 현장을 찾아 오늘의 「문화기류」를 짚어 내일을 조망한다.
『증산이 예언한 대두목 출현의 세계문화 통일 진법시대는 한국의 서울이 바로 그 중심입니다.』
고혈압으로 오른쪽 손발의 거동이 불편한데도 날마다 증산교 교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배용덕 증산사상연구회장(70)의 단호한 예언이다.
함남 고원출생으로 일본 명치대 정경학부를 졸업한 그는 증산진법회(73년)와 증산사상연구회(74년)를 창립, 지난해 말까지 사재를 털어 『증산사상연구』논문집 11권을 펴냈다. 『증산신학개론』(상·하)등 자신의 증산연구저서도 5권을 출판했다.
최근 증산사상이 새로운 문화사상 기류의 하나로 많은 대학가 학생서클과 지식인들의 관심을 모으게 된데는 배회장의 전 생애를건 이같은 노력과 헌신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증산교에 관심을 가진것은 4살때 증산교 신자인 부친으로부터 천자문을 배우다가 증산의 후천선경세계도래 이야기를 듣고부터 였다.
일본 유학 때부터는 증산사상에 심취, 졸업 후 취직도 않고 오직 증산연구의 외길만을 걸어왔다. 6·25피난시절 김제 금산사에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 3년동안의 수행후 서울로 울라와 지금까지 증산교 전법에 몰두해오고 있다.
79년 증산연구를 위해 김제에 내려가다가 기차안에서 고혈압으로 우수족 장애를 일으킨 후에도 그의 증산연구집념은 변함이 없다. 지난해부터는 종로의 사무실을 전농동 자택으로 옮기고 왼손집필을 하면서 홍법활동을 벌이고 있다.
배 회장이 직접 집필한 증산긴법회 교리 연구서 『증산이념과 천지공사』·『증산이념과 여성관』(73∼74년)은 학계의 증산사상 관심을 불러일으킨 나침반 구실을 하기도 했다.
증산교는 전북 고부출생의 증산 강일정(1871∼1909년)이 창도한 고유 민족종교의 하나다.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물샐틈없이도 도수를 짜놓았으니 제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기틀이 열리리라.
우리 나라는 좌상에서 득천하하리라. 미국은 한 손가락을 퉁기지 아니하여도 물러가리라. 이제 최수운을 일본명부, 전명숙(전봉준의 초명)을 조선명부, 김일부(본명 항)를 청국명부로 정하여 각 기일을 말아 일령지하에 하룻저녁으로 대세를 돌려 잡으리라』. 불교·유교·선도·기독교·천도교의 핵심사상과 전래의 역학·음양·태극사상 및 풍수지리설 등의 정수를 모아 창도한 증산교 경전 『대순전경』(5장10∼26절)이 밝힌 천지공사를 통한 후천개벽 후의 선경세계상이다.
후천개벽이라는 민족·민중의 사회개혁사상을 중심한 증산교 5대 교리는 ▲천지공사(사회개혁) ▲해원상생(화해공존) ▲원시반본(인간회복) ▲조화정부(세계평화) ▲정음정양사상(남녀평등)으로 압축된다.
증산교가 주목을 모으는 이유의 하나는 도수라는 숫자를 통해 후전선경시대를 구체적, 시간적으로 형상화시켰다는 점이다.
증산교의 우주운행의 도수는 1년을 12만9천6백년으로하고 생(춘) 장(하) 염(추) 장(동)의 4계를 갖는다. 양의 세계인 선천과 음의 세계인 후천은 각각 6만4천8백년씩이고 후천의 1차 천지공사는 증산이 이미 끝을 냈다고 한다.
김일부의 정역은 후천시대에는 북극의 빙하수가 남하, 태평양이 육지가 되고 미국·일본·유럽의 일부가 바다에 침몰하는 대섭국이 일어나며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며 성지가 된다는 것이다.
증산사상의 연구열풍은 최근 2, 3년사이 전국 50여개 대학에 연구서클이 생겨났고 84, 84년 대학내외에서 60여회의 강연회가 열리면서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지난해 2월 형설출판사가 펴낸 대학 「국민윤리」교재는 「신흥민족종교사상」의 장에서 증산사상을 중점적으로 비교 소개했다.
증산교가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관심을 모으는 중요 배경은 그 교리속에 담긴 민족주체성확립, 현세구원의 개방성, 민중사회사상, 문화통일사상 ,인존사상 등이 오늘의 시대적 여망과 일치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증산교의 종교·교단적 발전은 아직 미진한 상태지만 학계와 대학가의 증산사상 조명은 더욱 열기가 높아질 전망이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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