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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스물에 사장이 못 되면 대장부가 아니라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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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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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래
플래텀 대표

한국에선 많은 젊은이가 좋은 직장 취직을 꿈꾼다. 중국에선? 너도나도 창업해 ‘라오반(老板·사장)’이 되려 한다. 남이 장군이 ‘남아 스물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훗날 그 누가 대장부라 일컬으리오’라고 읊은 반면 요즘 중국의 청춘 사이에선 ‘나이 스물에 사장이 되지 못하면 그 누가 대장부라 부를까’라는 말이 유행 중이다. 그만큼 창업 열기가 뜨겁다. 창업의 밑천으론 모두 다 혁신을 외친다. 어떤 힘이 중국을 창업 국가로 만들고 있나.

왕양(汪洋·61)은 중국 부총리다. 내년 가을 열릴 제19차 당대회에서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진입이 유력하다. 그러나 중국 청년 사이에서 주목받는 왕양(汪洋)은 따로 있다. 1990년생 왕양이다. 그는 체중계 제조업체 ‘윈마이(雲麥)’의 창업주다. 지난해 스마트 체중계 50만 대를 팔아 샤오미(小米) 체중계를 제치고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공부해 좋은 직장 취직하기보다
창업해 사장이 되자는 중국 청년
현재 연봉으론 만족할 수 없다며
하루 1만2000여 새 법인 만들어
정부도 취업난 해소 목적과 함께
경제 혁신 위해 창업 붐 조성 중

90년생 왕양은 중학 시절 게임에 빠져 20만 회원의 게임 커뮤니티를 운영했지만 학교로부터는 자퇴를 권고받았다. 부모의 설득으로 다시 학업에 매진한 그는 대학생이 돼선 PC용 소프트웨어 상점을 차려 재미를 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인생 세 번째 창업에 나선 건 24세 때인 2014년.

창업 아이템으론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체중계를 택했다. 전통산업에 인터넷을 접목하자는 ‘인터넷 플러스’ 열풍을 타고 체중계를 가족 건강을 챙기는 ‘스마트 매개체’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성공하려면 혁신이 필요한 법. 그의 체중계는 중국 최초로 중국인이 무게를 잴 때 익숙한 근(斤·1근=500g)을 기준 단위로 채택했다.

또 스마트폰 앱과 연동시켰다. 비만 상태를 알려주는 신체질량지수(BMI)와 골격량, 신체 나이 등 8가지 데이터가 스마트폰 앱에 표시되며 식단 조절과 운동법까지 알려준다. 놀라운 건 가격. 프리미엄 모델인 ‘윈마이 하오칭(好輕)’이 199위안(약 3만5000원)이고 79위안짜리 체중계도 출시했다.

그런 윈마이에 중국 벤처업계는 지난해 4000만 위안을 투자했다. 향후 10조 위안을 웃돌 중국 헬스케어 시장에서 윈마이가 체중계의 성공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건강 생태계를 구축할 경우 현재 1억2500만 위안인 기업 가치가 얼마로 뛸지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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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엔 90년생 왕양처럼 창업을 꿈꾸는 수많은 청춘이 넘실댄다. 대륙에 창업 열풍의 불을 지핀 건 리커창(李克强) 총리다. 지난해 봄 중국의 연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전인대, 정협회의) 때 ‘대중창업 만인혁신(大衆創業 萬衆創新)’을 외치면서다. 혁신과 함께하는 창업이 중국의 성장동력임을 강조한 것으로 제2, 제3의 ABT(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가 나와야 중국 경제가 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후 중국의 창업 열기는 수치가 보여준다. 중국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에 따르면 2015년 중국의 신설 법인은 443만9000개를 기록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5년 전 94만 개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하루 평균 1만2000개 이상의 창업이 발생한 셈이다. 우리 전체 벤처기업 총수의 약 150배 가까운 숫자다.

중국을 창업의 나라로 만드는 힘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중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이다. 세 방면에서의 도움이 두드러진다. 먼저 창업을 잘할 수 있게끔 탄탄한 인프라를 구축한다. 중국 청년 창업의 상징과도 같은 곳인 베이징(北京)의 중관춘(中關村)을 비롯해 성(省)마다 혁신 산업단지를 만들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이다.

중관춘엔 40여 개 대학과 200여 개의 국가 과학연구소, 122개의 국가지정 연구센터가 밀집해 중국 전체 창업 투자의 3분의 1이 이뤄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곳에 창업과 관련한 기금 마련, 해외 진출 지원, 혁신거리 조성, 창업 지원 서비스 플랫폼 구축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또 중국 정부는 광둥(廣東)성 선전(深?)이나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등과 같은 2선 도시에 소프트웨어 파크나 하이테크 파크 등으로 불리는 산업단지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 산업단지는 창업(創業)과 창신(創新·혁신)의 쌍창(雙創)기지로 일컬어지며 2018년까지 중국 전역에 28개가 만들어져 정보통신(IT) 중심의 창업을 적극 지원하게 된다. 중관춘이 소프트웨어 중심이라면 선전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창업)이 가장 주목하는 곳이다.

중국 정부의 두 번째 지원은 인재에 대한 투자다. 이미 2011년부터 우수 유학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천인(千人)계획’을 마련했다. 천인계획 대상자로 선정되면 창업 초기 자본금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이르는 모든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연구 착수자금으로 200만~400만 위안이 지급되고 중국의 톱9 대학과 동급의 연봉이 주어진다. 천인계획은 더 나은 배움을 위해 중국을 떠났던 인재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도록 만드는 물질적·정서적 지원책이기도 하다.

세 번째 지원은 투자자가 마음 놓고 신생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투자가의 창업 투자에 대한 실패를 정부가 보상하는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상하이(上海) 시정부가 지난 2월부터 에인절투자 활성화를 위한 보상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게 대표적 예다. 이에 따르면 에인절투자가가 벤처기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해 투자액을 회수하지 못하게 될 경우 최대 600만 위안의 보상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중국 창업의 힘은 민간 영역에 의해 뒷받침되는 측면도 크다. 현재의 창업 열풍이 비록 정부 주도로 펼쳐지고 있긴 하지만 알리바바나 바이두, 텐센트 같은 민간기업이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적극적 투자를 진행해 창업 열기를 달구고 있다.

한 예로 알리바바의 자회사 알리윈은 다른 30여 개 투자회사와 공동으로 ‘촹커(創客)’ 계획을 발표하고 100억 위안 규모의 창업자금 지원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또 텐센트와 레노버 등도 창업센터 개소, 기금 조성 등을 통해 신생 벤처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미 대기업으로 발돋움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유망 스타트업을 상대로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선순환적 창업 문화가 형성된 셈이다.

중국 정부가 중국의 청년 세대를 창업의 길로 이끌기 위해 국력을 쏟아붓는 이유는 무얼까. 중국은 30년 가까운 고도 성장기를 마치고 이제는 ‘신창타이(新常態·중국판 뉴노멀)’라 불리는 중속 성장의 시대에 진입해 있다. 중국 경제 활성화를 위해선 혁신을 무기로 하는 창업이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취업난 해소 목적도 크다. 중국엔 매년 750여 만 명의 신규 인력이 발생한다. 현재 중국 대졸 인력의 절반가량인 300여 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2014년 10.5%에서 지난해엔 15%를 넘어섰다. 방치할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중국 청년은 또 단순히 일자리 자체가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에 대해 강한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 대졸자 취업 연간 보고서(2014)’에 따르면 ‘현재 연봉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56%에 달했다. 이처럼 불만족스러운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서 창업이 선호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 일고 있는 창업 열기는 결코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중국에서 사상 최대의 창업 붐이 조성되는 건 한국 신생 벤처기업에도 좋은 기회다. 중국 ICT 기업의 성공 사례를 이어 가려는 창업 열기가 향후 5~6년은 지속될 전망으로 중국 창업 생태계를 활용해 더 큰 시장을 상대로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청두시에는 7만㎡ 규모의 ‘중·한 혁신창업보육파크’가 지난 6월 문을 열었다. 이 보육파크는 지난해 10월 말 서울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리커창 총리의 발언이 시발점이 됐다. 당시 리 총리는 “중국의 ‘대중창업 만인혁신’ 전략과 한국의 ‘창조경제’ 전략은 모두 청년의 창의력을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중국 진출 시 고려 사항이 있다. 중국은 한국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통신환경과 사용자 습관이 다른 시장이기에 선행 조사가 필요하다. 또 중국 시장은 물론 중국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요구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전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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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중국에 이웃 나라는 협상이 아닌 관리의 대상이다



‘이익으로 사귐은 이익으로 인해 흩어지고(以利相交 利盡則散) 힘으로 사귐은 힘에 따라 기울기 마련이며(以勢相交 勢去則傾) 오로지 마음으로 사귀어야만 오래 지속될 수 있다(惟以心相交 方成其久遠)’는 말이 있듯이 충분한 이해가 선행돼야 작은 성과라도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중국이기 때문이다.

◆조상래=스타트업 미디어이자 중화권 네트워크 플래텀의 대표. 아시아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발기인으로 삼성전자S/W센터 기술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한·중 비즈니스 교류에 이바지한 공로로 2015년 미래부 장관상을 받았다.

조상래 플래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