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정치의 정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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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9일 국회의장공관에서 열린 3당대표. 총무 망년모임은 적어도 파란과 격동으로 점철된 을축년 정국을 되돌아보는 계기로서의 뜻은 지니고 있다. 모임의 성격으로 미루어 정치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나 결론이 있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12·2예산안 파동과 이와 관련된 의사당안 폭력사건 등으로 정국이 극도로 경색된 이후 처음 열렸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정국전개에 한가닥.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해준다. 여야 모두가 정국경색의 장기화가 바람직스러운게 아니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을 갖고있다는 사실을 이 모임이 확인해주었기 때문이다.
해를 지새우다시피한 여야의 가파른 극한대치가 2·12총선결과에 대한 전혀 상반되는 아전인수격 해석에서 연유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거대 야당으로 부상한 신민당은「변화」에 대한 국민적욕구를 대통령직선제에 대한 신임으로 단결,「개헌」이란 기치를 올렸으며, 이에 맞서 민정당은 의석수가 더 많다는 점을 내세워 강경일변도의 경직된 자세를 취하기에 이르렀다.
『밀리면 아주 밀린다.』는 여당의 강박관념이나『사꾸라로 몰리면 안된다.』는 야당의 위기의식이 정국을 풀기는 커녕 한층 뒤엉키게한 요인을 이루었다.
대화와 국민여망의 수렴이란 당위론이 그처럼 무성한 때도 없었지만 상황은 오히려 정반대로만 돌아갔다.
근본적으로 상대방을 불신하는 풍토속에서 정치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사사건건 대립만 하다보니 여야의 감정은 갈수록 쌓이기만 했다.
국회가 열려도 밀도있는 의안심의보다 극한적인 욕설이나 오가고 그나마 정기국회의 회기중 절반이상을 공전하는 모습을 보아야만했다.
그 뿐인가. 야당의원이 학생집회장에 나타났다해서 형사문제가 되고 예산안 변칙처리에 항의, 폭력을 썼다해서 야당의원과 보좌관들이 수사당국의 소환을 받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선거때 여야의석을 비슷하게 뽑아준 국민의 뜻은「안정 속의 변화」지 어느 한쪽의 완승이거나 완패를 의미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야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만을 일삼는 까닭은 물론 88년 정권이양과 이에 관련된 헌법문제에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여건 밑에서 직선제 개헌이 성취되기 어려운 과제임은 누구나 안다. 반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무작정 묵살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민정당이 국회안의 헌법특위협상에서「연구」란 선을 제시한 것이나 노태우대표가 대통령선거법개정용의를 비친 배경은 그런데 있을 것이다.
솔직이 말해 85년의 정치는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정치인의 공약이「공약」이 된것은 둘째치고 여야의 가파른 대결상이 또 한번 파국을 부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낳고있다.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바는 정치력의 발휘란 말로 요약된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고 양보를 할 마음가짐이 되지 않고서 대화는 없다. 대화와 타협이 정치의절대적 전제인것 또한 상식이다.
새해가 금년보다 더 나아질 조짐은 찾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새해엔 무언가 좋은 방향의 정치를 기대하는 것이 국민들의 한결같은 소망일 것이다. 다른것은 다 그만두고라도 경제와 민생을 외면하고 홀시하는 정치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은 다같이 명심해야겠다.
모쪼록 책임 있는 정치인들의 모임이 자주 열려 모든 정치현안을 이성과 대화로 풀어나가는 선례를 자주 쌓아 나갔으면 한다. 그것이 정치인의 본분이며 국민의 바람임을 재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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