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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문재인 열공 모드, 안철수는 중국어 과외 시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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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호 10면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여름휴가의 계절이 시작됐다. 2017년 12월 19대 대선에서 비상을 꿈꾸는 ‘잠룡’들에겐 올해 여름은 마냥 쉬는 시간이 아니라 ‘기회’이자 ‘과정’이다.


올해 말 대선전이 본격화되기 전 자신의 약점을 메우고 강점을 다듬을 마지막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7대 대선 한 해 전인 2006년 여름 부산의 낙동강 하류에서 경기도 한강 하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민생체험 활동을 하며 ‘경부 운하’ 구상을 구체화했다. 이를 통해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에게 한참 뒤지던 지지도를 상당히 만회, 다음 해 대선 승리의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교훈을 모를 리 없는 여야 예비 대선주자들의 2016년 여름은 어떨까. 중앙SUNDAY가 살펴봤다.

4·13 총선 패배 후 ‘잠행 모드’이던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달 말부터 ‘열공 모드’로 바뀌었다. 공부 주제는 ‘동반 성장’과 ‘제3의 길’이다. 김 전 대표 측 관계자는 “김 전 대표가 최근 교수 등 전문가들과 의원회관이나 제3의 장소에서 수시로 만나 공부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김 전 대표는 혼자 책을 읽기보단 전문가들과 문답·토론을 통해 식견을 넓히는 스타일”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김 전 대표는 최근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초청 조찬 강연과 정운찬 전 총리의 특강 등에 참석, 끝까지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보였다.


상당수 야권 대선주자들은 중국 공부로 올여름을 보낼 계획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이달부터 의원회관에서 주 2회 중국어 개인교습을 시작했다. 당이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시작했을 만큼 학습 열의가 크다. 안 전 대표의 측근은 “중국과의 관계가 갈수록 중요해져 시작한 공부다. 앞으로 중국에 갈 일이 많아질 텐데 중국어를 구사하면 더 친근한 인상을 줄 것이란 생각”이라고 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중앙SUNDAY 연재물을 엮은 『중국인 이야기』(김명호)와 도올 김용옥의 『중국일기』, 『옥스퍼드 중국사 수업』(폴 로프) 같은 책들을 읽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해 메르스 사태 이후 중국 관광객 유치를 고민하며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중국 관련 책들을 읽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중국, 그래도 중국』을 탐독 중이다. 중국의 대표적 외교전략가로 꼽히는 런민(人民)대 왕이웨이(王義?) 교수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분석한 책이다. 김 의원은 또 남경필 경기지사,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함께 11~12일 중국을 방문, 차세대 중국 최고지도자로 꼽히는 후춘화(胡春華) 광둥성 서기와 쑹타오(宋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만난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요즘 ‘코딩(coding)’ 공부에 한창이다. 코딩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일을 말한다. 2018년부터 한국 초·중·고교의 정규 교과목으로 채택됐다. 원 지사는 “성큼 다가온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우리가 선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자라나는 세대에게 무엇이 필요할지를 고민하는 차원에서 디지털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집필의 고통’ 속에서 여름을 나고 있는 이들도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최근 종로에서 연 개인 사무실에서 두 종류의 책을 쓰고 있다. “요새 제기되는 개헌 이슈에 대해 내 생각을 밝히는 책을 준비 중이다. 권력구조 문제와 4차 산업혁명 이후 변화할 사회에 맞는 기본권 조항을 고민하는 내용”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다른 책은 경제적 양극화 심화가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 의식과 리더십에 관한 내용이다. 집필을 위해 그가 보는 책도 다양하다. 『정조치세어록』(안대회)에서부터 『넥스트 코리아』(김택환)와 『국가는 회사가 아니다』(폴 크루그먼),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유엔미래보고서』 시리즈까지 그의 독서 목록에 들어 있다. 오 전 시장은 총선 낙선 후 근신을 끝내고 슬슬 몸을 푸는 기색이다. “가칭 ‘고르고 바른 사회 만들기 연구소’란 이름의 사무실을 내고 낙선한 새누리당 원외 당협위원장과 교수, 당 원로, 보수 인사들을 만나 의견을 듣는다”고 전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대한민국 대개조』(가칭)란 책을 준비 중이다. 다음달 발간 예정으로 현재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개헌 등 권력구조 개편과 정치제도 개혁, 민생을 위한 경제적 구조개혁, 남북관계의 혁신적 변화 등을 포함해 ‘병든 대한민국’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고민하는 내용”이라고 손 전 대표의 측근은 전했다. 저술을 위해 전남 강진 토담집 손 전 대표의 책상엔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버니 샌더스), 『2030 대담한 도전』(최윤식), 『압축성장의 고고학』(장덕진), 『복지국가의 미래』(전용덕) 등의 책들이 꽂혀 있다. “손 전 대표는 강진에 찾아오는 사람들과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긴다”고 측근은 전했다.

책에 파묻혀 여름을 나려는 다독(多讀)파들도 많다. 다음달 초 휴가를 떠날 예정인 김종인 더민주 대표는 부인 김미경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함께 ‘읽고 싶은 책’ 16권의 리스트를 만들어 지난 주말 그중 몇 권을 샀다. 『구글의 미래』(토머스 슐츠), 『허수아비춤』(조정래), 『2막의 멘탈』(오영철), 『인생수업』(법륜) 등이다. 부인 김 교수는 “휴가라고 해봐야 집에서 책만 읽을 것 같다”며 “앞으로 어떤 세상이 오는지,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공부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현재 김 대표의 책상엔 『21세기 대한민국 국부론』(김택환), 『권력구조와 예산제도』(옥동석) 같은 경제 정책 관련 책들이 놓여 있다고 한다.


박원순 시장도 중국 관련 책 외에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이 쓴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혁명』, KBS 특강 모음집 『명견만리』,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박경리의 『토지』(전 20권)를 10권째 읽고 읽는데 마음이 급하다.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총 22권)에도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두 종류의 대작을 함께 봐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안 지사는 “올해가 우리 도가 선정한 ‘여성 도정(道政)의 해’여서 여성주의 책들도 몇 권 읽어야 한다”며 책 욕심을 드러냈다.


상당수 잠룡들이 『축적의 시간』을 높이 평가한 점도 이채롭다. 이정동 교수 등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의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을 담은 책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축적의 시간』이라는 책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밝혔고, 박원순 시장은 이 책에 감명받아 최근 저자를 초청해 조찬 포럼을 열기도 했다. 김부겸 의원도 『축적의 시간』을 읽는 중이라고 했다.

해외로 나가는 잠룡들도 적잖다.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는 일찌감치 26일간의 히말라야 여행을 마치고 9일 새벽 귀국했다. 문 전 대표의 측근은 “8·27 전당대회 전까지는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공개 행보에는 나서지 않을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후 여름을 양산 자택에서 보내며 정중동의 행보를 보일 예정이다.


문 전 대표의 관심사는 경제, 특히 미래산업이다. 양산에서도 이 분야의 친한 전문가들과 수시로 의견을 나누며 공부를 이어가리란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이들은 “문 전 대표가 지난 대선이나 당 대표 선거 때 부족했던 부분들을 점검하고 바꿔보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며 “계기가 생기면 호남 방문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남경필 지사는 모친을 모시고 두 아들과 함께 이달 중·하순 일주일간 영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그는 “런던과 스코틀랜드 등을 돌며 ‘브렉시트’에 이르게 된 내부 갈등구조를 들여다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내년 상반기까진 대선 출마 여부를 밝히겠다고 한 그가 요즘 읽는 책은 『신의 위대한 질문』(배철현)이다. “과연 나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은 무엇일까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남 지사는 소개했다.


김부겸 의원은 이달 23일 출국해 27~29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방문 겸 휴가를 보낼 예정이다. 원희룡 지사는 출장차 싱가포르, 일본 홋카이도와 아오모리현 등 제주도의 자매 도시들을 방문한다.

대부분이 휴가를 계획하고 있지만 복당한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별다른 계획이 없다. 유 의원 측 관계자는 “여름이라고 해서 별다르지 않다. 특별히 좋아하는 운동도 없고 평소처럼 서울과 지역구(대구)를 오가며 의정활동을 할 뿐”이라고 전했다. 유 의원은 특히 정부와 산하 연구기관이 내놓은 보고서를 열심히 읽는다. 5월 31일 성균관대 특강에선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가 비공개로 낸 ‘한국형 사회갈등 실태 진단’ 보고서를 소개하며 “보고서엔 ‘폭발 일보 직전의 초갈등사회’라는 무시무시한 표현이 등장한다”고 언급했다. 유 의원 측 관계자는 “유 의원의 언행 하나하나가 다양한 해석을 낳는 상황이라 현재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밝히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쉴 여유가 없다. 검찰의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에 대한 대응 등으로 대표직을 내려놓은 뒤에도 매일 의원회관에 출근해 당과 상임위 상황을 챙기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요즘은 경황이 없지만 과학기술 혁명이나 산업혁명과 관련해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책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이충형·추인영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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