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가구 분양시장 뒤흔드는 69가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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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호 18면

한해 40만가구 가까이(지난해 기준) 쏟아지는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눈에 띄지도 않을 69가구가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서 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3단지를 재건축하는 ‘디에이치 아너힐즈’(현대건설 시공) 얘기다. 이 아파트는 전체 1320가구 중 조합원 몫과 임대주택을 제외한 전용 84~131㎡형 69가구를 일반에 분양한다.


이 단지는 최근 잇단 분양시장 규제의 표적이 되면서 일파만파 논란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가 시행일(7월 1일)을 불과 사흘 앞두고 지난달 28일 발표한 중도금 대출 규제의 첫 대상이 이 아파트다. 분양가 9억원 초과의 주택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중도금 대출 보증을 해주지 않기로 했다. 이 단지는 분양가가 3.3㎡당 평균 4000만원이 넘어 69가구 모두 가구당 10억원을 초과한다.


중도금 대출 규제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은 고강도 처방이었다. 연초 전망과 달리 분양시장이 과열되며 공급과잉 우려를 키웠다.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통한 기존 주택의 담보대출 규제 반사이익과 지난해 집값 상승세에 따른 분양권 웃돈(프리미엄)이 시장을 달구었다. 분양시장을 안착시키기 위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규제 단계론’ 의견이 많았다. 청약자격 강화, 분양권 전매제한 등을 강화하면서 시장 동향에 따라 규제의 강도를 높여 시장이 받을 충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도금 대출 규제는 마지막 카드로 꼽혔다.


‘단계론’ 뛰어넘는 고강도 규제그런데 분양시장 과열보다 중도금 대출 급증이 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올 들어 5월까지 늘어난 주택담보대출 금액 19조원의 절반이 넘는 10조원을 중도금대출이 차지했다. 지난해 말 발표된 올해 정부의 경제정책에 중도금 대출 억제가 들어있었지만 주택건설경기 위축을 걱정해 미적거리던 국토교통부도 가계대출 부실 우려에 어쩔 수 없었다. 청약제도를 손 보는 것을 뛰어 넘어 곧장 중도금 규제 카드를 꺼냈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예 돈줄을 죄기 때문에 굳이 문턱을 높이는 청약제도 손질은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7월 초 분양예정으로 알려져 있던 개포주공3단지는 갑작스런 중도금 규제를 벗어날 묘수를 찾았다. 6월 30일까지 분양승인을 받아 입주자모집공고를 발표하면 중도금 대출 규제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분양승인을 서둘렀다. 30일 분양승인 좌절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가 강남권 고가주택이 빠져나간 데 대한 비난을 우려해 분양승인에 필요한 분양보증을 내주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분양보증서를 쥐고 있으면서 노려본 것은 이 아파트의 분양가였다. 3.3㎡당 4300여만원으로 올 3월 분양된 인근 개포주공2단지(3.3㎡당 3700여만원)보다 불과 3개월새 600만원가량 뛴 게 거슬렸다. 통상적인 지사 심사에 이어 본사 심사, 특별 심사까지 언급하며 분양보증 심사를 까다롭게 했다. 분양가를 억제할 수 있는 분양가 상한제가 유명무실해져 정부가 직접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공사가 국토부의 2중대 역할을 떠맡은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공사는 “입주 무렵 집값이 떨어지면 미입주 등으로 사업에 문제가 될 수 있어 보증책임을 지고 있는 입장에서 분양가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연초 공급과잉을 줄이기 위해 미분양이 많은 지역에 대해 보증심사를 강화했는데 이를 분양성이 좋은 강남권에도 적용한 것이다. 중도금 대출 규제, 분양보증 심사 강화 모두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일로, 공사가 선봉장을 맡아 주택건업계와 겨루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우리를 ‘허그’(hug; 포옹)해줘야 할 공사가 매몰차게 돌아섰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도금 대출, ‘공짜’가 아니다주택업계의 불만은 많다. “연체가 거의 없고 보증 등으로 가장 안전한 대출의 하나인 중도금 대출을 옥죄어야 하나” “소비자가 판단할 가격 문제를 정부에서 간섭해야 하나. 지나친 시장 개입이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지나치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 이제 주택시장에 ‘빚 잔치’는 끝났다.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 빚을 갚을 능력이 떨어지면서 계속 빚을 낼 수 없다. 그래서 중도금 대출 규제도 앞으로 상환능력 등을 따져 이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도금 이자 후불제 등으로 이자 부담이 없고 원금 상환이 없어 거저인 중도금 대출은 입주 후 진짜 빚인 담보대출로 대부분 바뀐다.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이다.


무엇보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다. 어렵다고 확 풀어놓고 또 과열됐다고 찬물을 퍼부으면 안 된다.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시장 변화에 맞춘 제도나 규제의 미세조정(fine tuning)으로 시장을 연이륙(soft takeoff)·연착륙(soft landing)시켜야 한다. 급가속하거나 급제동하지 말고.


안장원 기자?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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