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어떻게 늘릴것인가<하>유망산업집중지원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금년들어 수출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무려 18가지나 된다. 수출에 좋다는 약은 모두 끌어모아 처방을 내린셈이다.
돈(설비투자)을 무제한으로 풀고, 수출융자단가를 세차례에 걸쳐 l3%나 올리고, 환율을 8%올리고, 각종 절차간소화와 부대비용인하등등….
『수출촉진을 위해서라면 정부가 할수있는 일은 총동원했습니다. 그래도 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선진국의 경기침체와 수입규제탓이지요』
한결같은 내용의 정부입장이다. 정부는 최선을 다했으나 해외여건이 나빴던 탓으로 수출이 부진했다는 설명이다.
당국자의 이같은 설명처럼 금년들어 정부가 여러가지 애를 쓴것도 사실이고 객관적인 수출여건이 나빴던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온 정부당국의 갖가지 처방이 집행의 실기로 인해 별다른 효험을 발휘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판단착오에서 비롯 연말 소나기로 선적>
정책의 실기는 판단착오에서부터 비롯됐다. 금년 수출의 부진은 이미 작년 여름부터 예상했던일이었다.
관련업계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적신호릍 알렸지만 정부는 『무슨소리냐』 며 태연한 자세를 견지했다. 오히려 실적에 급급한 나머지 연말에 무더기로 실어내기작전까지 벌여 말썽을 빚었었다.
뒤늦게 금년4월부터 환율을 올려대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유럽시장의 경우 흥정의 차원이 아니라 이미 거래자체가 완전히 끊겨져버린 뒤였다.
작년 가을께부터 손을 썼더라도 올해 수출양상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18가지의 처방이 아니라 그 절반의 투약만으로도 갑절 이상의 활기를 불어넣을수있었다.
수출의 즉효약이라고 하는 환율만 해도 그렇다. 금년들어 70원이나 올렸는데도 꿈쩍도 않았다. 지난 79년이후 최대의「환율인상」이었는데도 말이다.
환율처방이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나마의 환율인상이 아니였더라면 지금수준의 수출도 불가능했을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우리의 수출이 구조적으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반증이다.
따지고보면 수출의 역진정책도 없지않았다. 중소기업육성정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대기업의 수출조건을 일부러 까다롭게 했는가 하면 기업재무구조개선과 여신집중방지차원에서 은행대출을 꽁꽁 묶으면서 기업투자에 찬물을 끼얹었던게 사실이다.

<지속적 뒷받침 없어 백지화·완화등 거듭>
정부가 금년들어 내린 처방의상당수가 이런 조치를 다시 백지화 또는 완화시킨 것들이었다.
대기업 여신규제 한도에서 수출금융을 제외시킨 것이 대표적인그러한 예다.
그야말로 병주고 약주는식의 정책이었다.
「종합적인 판단」으로서의 정책이 아니라 제멋대로 따로따로 돌아가다 충돌을 빚고 그것이 심각해지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는식의 갈팡질팡하는 정책을 펴놨던 결과다. 혼선을 거듭해온 정책속에서 투자위축만 남겨놓은 것이다.
수출부진을 초래한 또하나의 근본적인 원인은 전반적인 산업정책차원에서도 찾아야 할것이다.
지금까지의 정책처방 역시 모두 가격정책이었다. 환율이나 수출융자단가 인상이 그것이다.모두들 단기처방에 속하는 것들이다.
매년 13%씩 수출을 늘려나가겠다고 큰소리를 치면서도 정작 이같은 수출증진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유망산업의 육성이나 집중적인 지원에는 다들 무관심해온것이다.
주무부서인 상공부사람들조차 집중육성이니 정책금융이니 하면 알레르기반응부터 보인다.예컨대 부품공업육성이 절실하다는 주의주장만 산재해있을뿐, 이것들을 누가 책임지고 끌어모아 실행에 옮져나가는 분위기가 아니다.
금년에야 비로소 개화하기 시작한 자동차수출을 두고 모두들『2∼3년만 앞당겨졌더라면…』하는 아쉬움을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러나 정부가 자동차를 수출산업으로 조금만 더 일찍 깨닫고 뒷받침했었더라도 충분히 씻어버릴수 있었던 아쉬움이다. 오히려 한국자동차가 수출에 성공하면 손가락으로 장을 지지겠다는식의 냉소가 더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이같은 뒤늦은 아쉬움이 앞으로도 계속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정부가 앞강서서 방향제시는 못해줄지언정 기업들 나름대로의 투자의욕을 꺾진 말아야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이니 걱정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처방은 정부당국의 정책태도에서부터 찾아야할 것이다. 수출구조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해가는데 대책없는 비상회의만을 거듭하고 해당기업들을 몰아붙이는 식이 여전히 수출행정의 본류를 이루고 있으니 문제다.
주종품목들이 하나같이 한계에 부닥친것이 최근 1∼2년사이에 확실히 증명되는 가운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텐데 이런쪽의 노력은 도무지 표가 나질 않는다. 전자제품의 경우만해도『새로운 수출상품으로 육성하겠다』고 말만 했지 상공부가 기껏 한일은 올해 수출목표를 3백30억달러로 늘려잡으면서 목표액중에 10억달러를 더 할당하여 떠맡긴것뿐이었다.

<대책없는 비상회의 부품산업등 육성을>
단순히 「유망산업」 이니까 다른데보다 더 많이 수출해야 될게아니냐는 것이다. 이쯤되면 정책이라기 보다는 억지에 가깝다.
부품산업의 경우도 새로운 유망산업으로서의 중요성만 강조되었지 여태 이렇다 할 육성대책이 나오질 않고 있다. 부실기업 뒤치닥거리에는 수천억원을 소리없이 쏟아 부으면서도 정작 전체경제를 먹여 살려나가는 새로운 젖줄을 찾는일은 계속 뒷전에 미뤄놓고 있는 것이다.
상공부를 중심으로 수출계획을 최근 다시 고쳐 짜고 있다. 5개년 계획상에 목표했던 연평균13%의 증가율은 현재 여건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획을 낮춰잡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작년 수출목표를 무리인줄 알면서도 3백30억달러로 잡았던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최소한 수출을 매년 13%씩 늘려가지 않으면 7%의 성장목표설정이 불가능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형편은 다급한데 돌파구는 잘안보이니 걱정이다. <끝><이장규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