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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드] 간통제 폐지 이후…불법 판치는 사이버 흥신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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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있는 곳은 터미널 근처 호텔 000가 유력할 것 같아요. 오늘은 주무시고 새벽 다섯시 삼십분 부터 미행하시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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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불륜을 의심하던 A씨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흥신소에 남편을 미행해 달라고 의뢰했다. 흥신소 업자 홍모(40)씨는 남편의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달고 그를 미행했다. 홍씨는 남편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했고, A씨는 이 대가로 250만원을 지불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4일 위치정보를 포함한 개인정보를 흥신소에 판매한 혐의(위치정보보호법 위반 등)로 브로커 홍모씨(40)와 해커 김모씨(27), 흥신업자 임모씨(40)를 구속했다. 이들에게 사건을 부탁한 의뢰인 등 39명 역시 불구속입건했다. 범행은 총책임자 임씨가 해커 김씨와 택배기사 윤씨로부터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취득해 이를 흥신소 업자에게 넘기는 방식이었다. 임씨는 2014년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불법으로 수집한 개인정보를 의뢰인 1204명에게 제공한 대가로 총 10억2477여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홍씨는 휴대전화 등본 주소 조회 15만원, 위치추적 30만원, 전화번호 조회 20만원, 병원기록 40만원, 재산조회 30만원 등 개인정보별로 가격을 정해 영업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검거된 의뢰인 42명 중 34명은 애인이나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했고 흥신소에 차량 위치추적 등을 요청한 이들 중에는 30대 회사원, 대학 연구원, 시청 공무원도 포함돼 있었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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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제 폐지 이후 흥신소 이용 늘어
지난해 5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간통죄(241조)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뒤 흥신소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약 3000개의 흥신소가 있으며, 5000명이 활동하고 있다. 월 수익은 500~1000만원 선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흥신소가 온라인 영업까지 벌이면서 의뢰인들의 접근이 더 쉬워졌다. 포털사이트에 ‘흥신소’를 검색하면 25개 업체가 나온다. 가격은 위치추적 80만원, 주소지 정보 70만원, 출입국 관리기록 40만원, 병원 기록 30만원 등으로 세분화 되어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흥신소를 이용하는 사람들 중 80% 이상이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해 일을 의뢰한다"고 밝혔다. 법원이 위자료를 책정할 때 이혼의 책임 정도를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혼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의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대형 흥신소의 관계자는 “잘 나가는 흥신소는 불륜 관련 의뢰를 하루 20통 이상 받는다. 간통법 폐지 이후 조직이 커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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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과 불법의 모호한 경계선
현재 흥신소는 합법과 불법의 모호한 경계선에 놓여 있다. 현행법상 심부름센터는 '기타 서비스업'으로 분류돼 사업자 등록을 내고 운영이 가능하다. 그러나 위치추적기를 타인의 차량에 설치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는 위치정보법 위반이다. 개인정보 거래 역시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해당된다. 경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흥신소를 관리·감독할 법적 근거가 없다보니 흥신소가 마구잡이식으로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수요가 계속 있는 이상 근절되는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민간 조사업' 합법화 추진도
민간 조사업을 합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외국의 경우 미국과 영국, 독일, 일본 등에서 사설탐정제도가 활성화돼있다. 민간조사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곳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4개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국내에서는 흥신소와 심부름센터가 이러한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탐정학교와 대학 내 탐정학과도 있다. ‘셜록 홈즈’로 유명한 영국은 2001년부터 국가 자격증 '경비산업공사(SIA)'를 취득한 사람만이 사설 탐정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6월에는 전·현직 경찰관들이 '사설탐정(민간조사원)' 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단체를 설립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경찰 내부망 게시판에는 '대한공인탐정연구원' 회원을 모집하는 공고가 올라왔다. 대한공인탐정연구원은 정수상 전 고양 일산경찰서장을 회장으로 하고 발족 준비 중이다. 특허청에 로고의 상표등록도 마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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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은 지난해 '민간조사제도 어떻게 도입해야 하나?'라는 소책자를 내 민간조사업이 도입되면 1만 5천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1조 2천724억원 규모의 매출이 발생하는 등 경제효과가 기대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단체 홍보를 맡은 김규식 서울 종로경찰서 경무과장은 "보험·의료사고 분쟁을 비롯한 각종 민사소송 사건은 경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서민들이 이런 사건에 휘말리면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며 "개인 대 법인이나 서민 대 재력가 등 정보 격차가 큰 사건에서는 공인탐정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1998년 15대 국회에서 하순봉 의원(한나라당)이‘공인탐정에 대한 법률’을 입법 추진했지만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17대 국회에서 이상배 의원(한나라당)과 최재천 의원(열린우리당)이 ‘민간조사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19대 국회에서는 경기지방경찰청장 출신인 윤재옥 의원(새누리당)과 국군기무사령관 출신인 송영근 의원(새누리당)이 발의한 법안 두 건을 제출했다.

홍수민 기자·이병채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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