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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족」<zombie>을추방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대기업병」이 번지고 있다.대기업이라는 거대한 조직속에 묻혀 웃사람눈치나 보면서적당히 시간만 때우는 소위 좀비(zombie)족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건 또 어떻게 할까요』『일더 한다고 누가 알아주나』『없는 일을 왜 만들어』를 입버릇처럼 뇌까리며 걸핏하면 관례나 규정을 들먹이는 좀비들때문에 대기업들이 속으로 앓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를 해치는 행위등 겉으로 드려나는 병이야 일찍부터눈에 띄니까 얼마든지 치유가가능하지만 속으로 번지는 병은 곪아 터지기 전까지는 알기도 어렵고 또 그때가서 뒤늦게 손을써봐야 낫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대기업 병은 심각한 문제라는데 경영전문가들도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최근들어 국내 대기업들도 불황이 장기화하고 내외의 경제여건이 계속 악화됨에 따라 대기업병에 대한 관심을 구체화하는 움직임이 일고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얼마전 쌍용그룹은자체조사를 통해 대기업병의 증상을 밝혀내고 그 결과를 전종업원들에게 알림으로써종업원 스스로의 자각을 촉구하고 나섰다.
쌍용에서 대기업병에 관한 문제제기가 있자 다른 기업들이참고자료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는것.
쌍룡의 김태문상무는『안일한의식으로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수 없다는 인식에서시작했다』면서『제시된 대기업병 증상에 자신을 비추어보는 움직임이 전사적으로 확산되고있다』고 말한다. 쌍용은 44가지의 대기업병 증상을예시했다.
▲사람보다 도장이,합리성보다 규정이 큰 힘을 발휘한다.
▲일찍 끝낼수 있는 일도 질질 시간을 끈다.
▲반복적이고 틀에 박힌 일이많다.
▲과장일을 부장이,사원일을 과장이 하는 경우가 많다.
▲각종 인맥에 의한 보이지않는 당파가 생겨난다.
▲회의나 보고가 지나치게 많고 계수중심의 결과주의가 지배한다.
▲부서간에 의사소통이 별로없고 부서장간의 알력이 심하다.
▲합리적 설득보다 고위층의지시나 메모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고위층의 지시나 관심사항에 간부층이 지나치게 민감하다.
▲경험중심적 업무처리로 창의가 배척된다.
▲목에 힘주는 사람과 습관적 예스맨이 많다.
이같은 것은 대기업병증상의 일부.
이러한 대기업병 증상은「좀비족」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나 회사발전에 문제가 된다.「좀비족」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일본의 경영컨설턴트「우시바·야스히꼬」씨.「좀비」란 서아프리카 부우두우교의 뱀신(사신)의 이름. 뱀신의 기질에 비유하여 사람에 적용한 것이다.
그는 좀비족의 특성을 창의를 싫어하고 자기밖에 모르며자기만이 옳다는 착각속에서 눈치만 살피며 약자위에 군림하는 족속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일수록 이런 좀비족이 많다는 얘기다.
이창우성대교수(산업심리학)는 이처림 좀비족이 늘어나고대기업병이 발생하는 것은 기업규모 비대화에 따른 필연적 현상이라면서 기업본래의 업무수행에 필요한 조직이외의 불필요한 조직들이 나타나는 것을대기업병이 발생하기 시작한 증거로 볼수있다고 말한다.
이교수는 대기업 병의 대표적증상으로 분파주의와 무사안일주의를 들고,이로 인해 결국 기업전체의 순환계통이 마비돼생기잃은 공룡꼴이 되고만다고경고한다. 그렇게 되지 않기위해서는 형식을 앞세우는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에서 탈피,불필요한 관리조직을 과감히 축소할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선경의 윤영범이사는 분파주의에 의한 부서간의 갈등과부조화를 대기업병의 대표적증상으로 꼽고 현실적인 대처방안읕 제시하고 있다.대기업내에 좀비족이 늘어나는 요인중에는인사정체가 큰 비중을차지한다는 점을 고려,능력있는 직원에 대한 발탁 인사를단행함으로써조직내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경영컨설턴트 이상헌씨는 『나하나쯤이야』『가만있으면 중간은 갈텐데』라는 생각때문에대기업에 들어간 많은 능력있는엘리트사원들이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면서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종업원들의 주인의식을 길러줌으로써 자발적으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할수 있도록 해야대기업병에서 벗어날수 있다고충고한다.
그러나 신유근서울대교수(경영학)가 대기업병을 보는 시각은 좀 다르다.종업원의 무사안일주의때문에 대기업병이 발병한다고 보기이전에『왜 종업원들이 무사태평해졌는가』를 우선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그것은 결국 대기업이란 조직이 그렇게 만들었다는것이 신교수의 주장이다.
따라서 대기업병을 말하면서종업원들만 나무랄게 아니라 조정과 통합이 자유로운 살아있는 조직을 설계함으로써 종업원들이 명확한 소속감을 갖고마음껏 능력을 발휘할수있는 터전을 마련해줘야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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