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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과 창업] 목표 정하고 스펙 설계…우린 ‘온리 원’ 전략으로 합격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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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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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좁았던 올 상반기 취업문을 통과한 신입사원들이 꼽은 취업의 비결은 ‘온리 원’ 정신이다. 한 명을 뽑더라도 우리 회사, 우리 팀에 꼭 맞는 ‘맞춤형 인재’를 선발하려는 채용방침을 전략적으로 공략한 것이다. 이들이 밝힌 합격의 비결을 키워드로 정리했다. [사진 오상민 기자]

올 상반기 롯데케미칼에 연구원으로 취업한 김희영(26·여)씨는 취업 준비를 5년 했다. 석사 학위가 있어야 지원이 가능한 연구원을 꿈꿨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자동차나 항공기 등에 쓸 수 있는 특수소재 플라스틱 연구를 하고 싶었다.

5대그룹 신입사원 5인의 비결
앱 만드는 실력, 중대장 출신 리더십
장점·특기로 ‘왜 나인가’ 회사 설득
공모전 입상해 미리 낙점 받기도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동양공전 화학과 출신인 김씨는 1년간 공부를 해 성균관대 고분자공학과에 편입했다. 이후 ‘고분자 복합재료의 열 전도 연구’로 석사 과정까지 마쳤다. 하지만 채용시장 중에서도 고(高) 스펙을 요구하는 연구원은 취업이 어려웠다. 지난해 하반기 10여곳의 회사에서 몽땅 떨어졌다. 올해도 낙방을 계속하다가 결국 롯데케미칼에 합격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삼성그룹의 화학계열사를 인수한 롯데그룹의 주력 계열사다. 김씨는 “석사 논문의 연구 과정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연구원을 꿈꿔왔던 내 자신의 삶과 포부를 어필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취업 시장이 마르다 못해 타들어갈 수준이다. 연세대 경영학과에 다니는 학생 A씨는 “주변에 삼성·현대차에 들어간 친구가 거의 없다”면서 취업난의 현실을 전했다. 그래도 분명히 합격한 사람은 있다. 본지는 올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 기준 5대 그룹(삼성·현대차·SK·LG·롯데)의 상반기 우수 취업자를 만나 취업 비결을 물었다.

이들이 제시한 키워드는 ‘온리 원(only one)’이었다. 수많은 지원자 중에서 세부 직종 별로 많아야 십여명, 적게는 한두 명이 뽑히는 경쟁에서, ‘왜 나인가’를 설득하지 않으면 합격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회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기본이다. 이경수 롯데그룹 과장은 “최근 백화점에 지원한 학생들이 면접에서 발표하는 시장 전략을 들어보면 백화점 매장에 최소한 10번은 와보고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면서 “입사 전형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지원자들은 애초부터 지원 계열사·입사전형·직무 등을 구체화시켜 놓고 대학 4년간 경로설계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경영지원부문에 합격한 신승하(29)씨는 ‘온리 원’ 인재의 대표적인 예다. 그는 “현대차 하나만 바라보고 직업 군인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해군사관학교에서 해양학을 전공한 그는 올해 2월까지만 하더라도 해병대 대위였다. 하지만 현대차에 재직하는 장교 출신 선배들을 보면서 새로운 꿈을 키웠다.

군인 출신으로 갓 대학을 졸업한 동생들보다 영어 성적 등은 밀렸다. 하지만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세계 4위 자동차 메이커니깐 영어나 학벌 등 날고 기는 친구들이 많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중대장 출신으로서 ‘사람 관리’만큼은 자신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고 말했다. 나이나 영어 성적 등 불리한 점은 노력으로 만회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현대차그룹 인적성시험(HMAT) 문제집 10여권을 모조리 풀어봤을 정도다. 면접관들은 신씨의 리더십과 입사 의지, 노무 직무에 대한 포부 등을 감안해 합격점을 줬다.

‘온리 원’ 인재들은 자신의 특기를 최대한 살리는데 익숙했다.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직군에 합격한 김영규(25·고려대 컴퓨터학)씨는 평소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던 솜씨를 뽐내 취업에 성공했다.

그는 지난 2014년 SK텔레콤의 ‘스마트서비스 공모전’에서 경로 추천 앱을 출품해 입상했다. 데이트·카페찾기·가족식사 등 모임의 성격에 맞게 주변에서 적절한 식당을 찾은 뒤, 증강현실 기술을 입혀 실감나게 경로를 보여주는 내비게이션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직군에서는 삼성직무적성검사(GSAT) 대신 코딩 테스트를 하는 점을 노렸다. 그는 주어진 제약 조건에서 최선의 답을 찾는 알고리즘 문제를 ‘너비우선검색(BFS)’ 기법으로 능숙하게 프로그래밍해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김씨는 “올해 채용에서 직무가 더 중시된다는 점을 감안해 코딩 스킬과 감각을 꾸준히 유지했다”고 합격 비결을 전했다.

하지만 무작정 튀려는 행동은 금물이다. SK네트웍스 HR팀에 합격한 정성민(26·외대 행정학)씨는 ‘무난함 트레이닝’을 합격의 비결로 꼽았다. 그는 “많은 취업 준비생이 자신만의 강점이나 포부를 밝히기보다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튀려는 생각부터 한다”면서 “면접관 세대와 가까운 부모님 및 선배들과의 꾸준한 모의 면접으로 ‘면접의 균형점’을 찾은 것이 합격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비교적 ‘손쉽게’ 상반기 채용을 끝낸 사람도 있었다. LG그룹의 대학생 공모전인 ‘LG 글로벌 챌린저’에서 입상해 면담을 거쳐 원하는 계열사를 선택한 류현재(25·연세대 생활디자인학)씨다. 그는 학교 친구 3명과 함께 ‘동물을 매개로 한 청소년 재소자 교화프로그램’을 개발해 LG 글로벌 챌린저에서 우수상을 탔다. LG 글로벌 챌린저는 매년 약 3000여명이 지원해 6팀(24명)만이 입상하고 LG그룹 입사자격을 얻는다. 류씨와 함께 미국의 청소년 재소자 프로그램을 연구했던 친구들은 각각 LG그룹 계열사중 전자·생활건강·하우시스에 입사를 결정했다.

임민욱 사람인 팀장은 “경기 침체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채용 규모가 줄어들면서, 기업들이 우리 회사에 꼭 맞는 것 같은 ‘맞춤형 인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면서 “취업준비생들도 목표 기업 몇 곳을 정해놓고 나 자신을 맞춤형 인재로 어필할 수 있는 연구와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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