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성촌 입향조가 잡은「당풍」의 전설적 명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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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경북 성주군 초전면 월곡1리 속칭 홈실(명곡)마을.
팔작지붕의 골기왓집이 처마를 맞대고 43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고풍스런 마을이다. 43가구 중 5가구를 제외하곤 몽땅 벽진 이씨 한성바지다.
8백여년 전 고려인종때 금자광녹대부이던 입향조 이방화가 당풍(당나라 풍수지리)의 명당을 찾아 이곳 곡성산아래터를 잡았다.
그러나 『누대에 5형제가 태어나 고관대작의 벼슬에 오르면 마을을 떠나라』는 입향조의 유언으로 불과 8대를 살다 뿔뿔이 흩어지는 비운을 맞았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입향조의 8세손 희경공이 경상병마도원수의 벼슬에 올랐고 슬하에 건지(이참판서), 번지(병조판서), 수지(운봉감무), 신지(이조판서), 사지(중낭장) 등 5형제가 벼슬길에 오른 데다 숙질간에 8만서가 나 명문대가로 번창했으나 이어 쇠운을 맞았던 것.
『집집마다 소·말·개·닭이 죽고 곡성산계곡의 물이 넘쳐 마을과 들판이 고스란히 물에 잠기는 이변이 일어났으니 입향조의 말이 꼭들어 맞은 게지.』 27세손 이종열옹(79·한학자)의 말. 천재지변으로 희경공의 장남 건지와 3남 수지는 칠곡으로, 2남 번지는 선산, 4남 신지는 창령, 5남 사지는 밀양으로 권속을 데리고 흘어졌다.
그 후 2백여년을 지나 칠곡의 후손들이 폐허가 된 입향조의 터를 닦고 가문을 일으켜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는 가구당 소득 5백만원의 중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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