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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경의 Shall We drink] <22> 비엔나 카페 기행 ① 클래식 카페 사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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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은 650년간 오스트리아를 통치한 합스부르크 왕가가 남긴 건축물로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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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중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영어명 비엔나, Vienna)에 있는 것은? ①비엔나커피 ②비엔나소시지 ③비엔나 카페. 셋 다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천만의 말씀. 빈에는 비엔나커피도 비엔나소시지도 없다. 비엔나 카페는 있다.

카페 없는 나라가 어딨냐는 삐딱한 시선은 잠시 접어두자. ‘비엔나 카페’는 커피만 마시는 곳이 아니다. 19세기 말부터 예술가들은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악상을 떠올리고 예술을 논했다. 빈엔 그 시절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카페가 150여 곳에 달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카페에서 아침을 먹으며 신문을 읽고, 카페를 작업실 삼아 시간을 보낸다. 오랜 세월 고유의 전통을 이어온 카페 문화는 2011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카페에서 시간 보내기야말로 빈 여행의 묘미다. 대부분 링스트라세(Ringstrasse) 주변에 있어 찾기도 쉽다. 링스트라세는 19세기 말 합스부르크(Hapsburg) 왕가의 프란츠 요제프(Franz Joseph) 황제가 성벽을 허물고 만든 순환도로다. 이 둥근 도로를 따라 국립 오페라 극장, 미술사박물관, 시청 등 명소가 모여 있다. 명소 옆 골목마다 카페가 둥지를 틀고 있다.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거리를 거닐다 한 박자 쉬어가고 싶을 땐 그저 골목 안 카페로 스며들면 된다.

카페 첸트럴에서 맛본 아침 식사. 커피를 주문하면 물, 초콜릿과 함께 은쟁반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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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에서 가까운 카페 첸트랄(Cafe Central)은 1876년 문을 연 후 카페 문화를 꽃피웠다. 프로이트, 트로츠키, 스탈린, 히틀러 등 역사적 인물들이 이곳을 찾았다. 그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이는 시인 페터 알텐베르크(Peter Altenberg)다. 당시 카페에는 ‘단골의 지정석’이란 뜻의 ‘스탐티쉬(Stammtisch) 문화’가 있어 오래 있어도 눈치 주지 않고, 그의 앞으로 온 편지까지 전해줬단다. 커피를 주문하면 물과 초콜릿을 함께 내주는 것도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배려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래서 카페 첸트랄에 가면 입구에서 페터 알텐베르크 실물 크기의 인형이 손님을 맞이한다.

국립 오페라 극장 건너편엔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가 처음 만난 카페 무제움(Cafe Museum)이 있다. 19세기 말 과거의 양식으로부터 분리를 주장한 예술가 단체 제체시온(Secession)의 전시장과 가까워 오스카 코코슈카, 오토 바그너도 단골이었다. 오픈 시 '장식은 죄악이다'란 말을 남긴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디자인한 모던한 인테리어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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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카페 슈페를은 100년이 훌쩍 넘는 연륜을 뽐낸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rise)’의 배경으로 유명해진 카페 슈페를(Cafe Sperl)도 1880년 이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입구에는 도서관에서나 볼 법한 나무 봉으로 된 신문철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고전적인 인테리어에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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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슈페를에서 느긋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이렇게 카페 순례를 하다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감지하게 된다. 테이블은 대부분 반질반질한 대리석이고, 의자는 등받이의 매끄러운 곡선이 돋보이는 토넷(Thonet) 의자와 소파가 섞여 있다. 그 사이로 검정 양복을 입은 종업원이 오간다. 신문철, 대리석 테이블, 토넷 의자, 나비넥타이를 맨 종업원은 전통적인 카페의 구성요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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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의 전통적인 카페마다 놓여있는 신문철이 정겹다.

한데, 어느 카페에도 비엔나커피는 없다.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커피는 비너 멜랑쥐(Winer Melange)로 우유를 넣은 커피 위에 우유 거품을 살포시 얹어 카페라테와 비슷하다. 우리가 흔희 떠올리는 비엔나커피와 가장 비슷한 커피는 아인슈패너(Einspanner)로 에스프레소 위에 휘핑크림을 듬뿍 올려준다. 그 밖에 우유를 넣은 커피 위에 휘핑크림을 얹은 프란치스카너(Fraziskanner), 럼주를 넣은 에스프레소 피아커(Fiaker)등 커피 종류만 수십 가지다. 블랙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검다는 뜻의 슈바르쳐(Shwarzer)를 시키면 된다. 대부분의 카페는 커피 외에 와인과 맥주, 가벼운 식사 메뉴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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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슈페를에서 느긋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주문할 땐 슐디궁(Shludigung, 실례합니다)이라고 종업원을 부르면 좋다. 그다음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공간을 음미할 차례다. 어차피 재촉한다고 커피가 빨리 나오지 않을뿐더러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눈치 주는 이 하나 없다. 현지인들은 온전히 시간의 주인이 된 표정으로 책장을 넘기거나 노트를 들여다보며 커피를 마신다.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카페 분위기에 맞춰 그리운 이에게 엽서를 써보면 어떨까. 엽서가 없다면 컵 받침에라도 끄적여 보자.

카페의 컵 받침이나 엽서에 글쓰기를 좋아했던 시인 페터 알텐베르크는 이런 글을 남겼다. ‘예술은 삶이다. 삶은 삶이다. 그러나 삶을 예술적으로 사는 것은 삶의 예술이다.’ 만일 내가 다시 페터 알텐베르크의 아지트, 카페 첸트럴를 찾는다면 컵 받침에 그 글귀를 패러디한 문장을 써보고 싶다. ‘예술은 삶이다. 카페도 삶이다. 그러나 카페를 예술적으로 즐기는 것은 카페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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