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 정국〉(3)공전국회 돌파구가 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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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의 장기 공전이 여야 모두에 이롭지 못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여야는 국회조기정상화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 같다.
이재형 국회의장을 가운데 둔 여야대표들의 간접적인 연쇄접촉이 몇 차례 이루어지더니 신민당의 단독 등원결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국회정상화가 앞당겨지는 것은 부의장선출파동과 국회정상화를 별개로 처리한다는 방침이 대충 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파동으로 여야가 겪고 있는 진통은 당지휘체체의 동요와 계파대립, 여야간 뿌리깊은 불신, 정치신의 추락 등 복합적이기때문에 이같은 문제들의 해결이 일시에 이루어지기를 기다릴 순 없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국민의 존재를 망각, 무시한 아마추어 정치·파벌정치가 저지른 의정마비를 놓고 여야는 그동안 당내문제로만 허둥거려왔다.
집권 민정당은 『냉각기를 갖겠다』『시간이 묘약』이라고 숨을 죽여왔고 신민당은 『해당분자를 징계해야한다』 『지도부를 인책해야한다』고 콩볶듯 떠들어왔다.
민정당은 신민당에 대한 위약에 대해 어떻게 보상하고 신민당의 체면을 무엇으로 세워줘야 할지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었고 신민당도 여야 경색완화나 국회정상화를 생각하기에는 당내 수습의 불을 끄는 일이 더 급했던게 사실이다.
이같은 우울한 상황속에서 그나마 한가닥 기대가 쏠린 곳이 국회의장실이었다. 다행히 이재섭 국회의장이 제헌이래 7선의 관록과 특유한 처신으로 12대 국회의 의사봉을 맡은 후 「길길이 날뛰는 회의장」을 나름대로 다스려 온 실력을 보여온터라 이번 같은 난국에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은근히 요청받게 된 셈이다.
실제 지난 28일 부의장파동후 줄곧 이의장은 매우 분주하게 움직였다.
29일과 31일에는 민정당의 노태우대표위원이 의장실을, 30일에는 이의장이 민정당을 서로찾아가 요담했다.
민정당의 「위약」에 격분, 누구도 만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이민우 신민당 총재도 노대표와는 만날 필요가 없다면서도 이의장에게만은 사태발생 하루만인 29일 서둘러 찾아가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나 국회가 정상화 된다해도 당장 모든 문제가 화끈하게 다 풀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신민당은 민정당에 「공개사과와 응분의 책임」을 화해조건으로 제시했다.
민정당은 노대표가 대내외적으로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고 「피해당사자」에게도 전화로 「직접사과」를 함으로써 이 대목은 문제가 없으나 「책임」부분에 해당하는 인책은 아직 속단하기 어려운 상태다.
이제까지의 민정당 태도는 부의장선출때의 여당산표는 항명이 아니기 때문에 인책은 않겠다는 것이었으나 이 문제는 당내에서도 명백한 결론이 난 것 같지는 않다.
산표로 당명을 이탈한 일부 중진 의원들을 포함한 많은 의원들이 문제의 확대·비화를 우려,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은 소속의원 전체에 있다며 인책불가론을 펴고 있지만 책임부분을 강조하는 의견도 없지 않다.
사태후 열린 의원총회와 중앙집행위에서 이용훈의원·윤석형씨등은 국정을 이끌어가야하는 민정당도 정치도의나 신의문제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이 문제는 시간을 끌지 말고 취할 조치는 빨리 취해야한다는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국회 및 정국의 정상화 방안으로서의 책임문제는 민정당안에서도 실제로는 논의의 불씨가 가려져 있을 뿐이라고들 보고 있다.
여야대화의 성의를 보이고 사태를 매듭짓기 위해 제출된 이세기원내총무의 사표가 노대표선에서 반려되고 산표의 당명이탈로 당지휘부의 체면을 실추시킨 위원들에대해 현재 민정당이 간과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최종결정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넘어가지만 앞으로 개편이 있거나 신민당이 총무결정등 당직 개편을 하는 경우 여당으로서도 지금 자세로 버틸 수는 없을거라는게 중론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범여권의 이번 국회부의장선출 파동에 대한 평가는 김대중씨가 인선한 인물을 떨어뜨림으로써 동교동이 타격을 받은 것은 잘 된 일이며 인책까지는 필요치 않다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국회정상화를 추진하는데 있어서도 일단 「책임」대목은 제외됐으며, 신민당도 굳이 책임문제를 정상화의 조건으로 고집하지는않았다.
신민당의 이런 태도는 국회의 조기정상화가 당면한 최대과제인데다 스스로도 당직개편을않고 넘어가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한다. 만일 민정당이 총무를 바꾸면 신민당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신민당 주류로서는 총무 경질을 원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정상화의 가장 까다로운 장애요인이 될 것 같던 「책임」문제는 여야간의 이같은 속셈에 따라 일단 분리처리라는 방법으로 우회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다같이 패자가 되고만 이번 사태를 놓고 여야는 오래 끌어봐야 득이 없다는 인식에 도달한 것 같다. 여당으로서는 국정을 책임진 입장에서 「위약」이니, 정치신의를 저버렸다느니 하는 여론의 화살을 더 이상 맞아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이었고, 야당으로서는 원외에서 이렇다 할 투쟁의 방법도 찾기 어려운 터에 귀중한 정기국회의 기간만 까먹는다는 것은 그대로 손실의 누적만 가져올 뿐이었다. 톡히 야당으로서는 이번 사태에서 자체의 산표도 엄청나게 컸기 때문에 여당을 몰아불이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번 사태로 여야 지도부는 내심 많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상대의 실체에 대한 재인식과 각자 집안내부의 복잡한 사정, 그에 따른 전략·전술등을 새삼 모두 재검토해야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한남규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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