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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즐기며 배우자도 물색 | "같은 처지"…이해도 빨라 | 결점 보완하며 즉석 구혼도 | 부모들도 함께와 애정어린 눈으로 자녀들 지켜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지난 26일 밤은 앞을 볼 수 없는 청년도, 목발에 의지해야 하는 처녀도 가슴 설레는 토요일 밤이었다.
서울 YWCA가 결혼 적령기를 맞은 남녀 장애자를 위해 마련한 제2회 「만남의 광장」 에 모인 25쌍의 선남선녀들은 마치 오랜 벗을 만난 양 시종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예정보다 2O분이 지연된 하오 5시 20분, 서울 YWCA 임정심 이사(프로그램 부위원장)의 『상대방이 누구든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해 달라』는 기도로 시작된 이날 모임은 안상호씨(레크리에이션 연구가)가 참석자끼리 『반갑습니다』란 인사말과 함께 5번씩 악수를 나누게 하면서부터 서서히 분위기가 풀리기 시작.
『바위섬』 『모두가 사랑이예요』 『인생은 미완성』 『고향의 봄』 등 귀에 익숙한 노래를 다 함께 따라 부르면서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만남의 광장」 첫 자를 딴 4행시 짓기와 모자 만들기.
조별 시합이 된 4행시 짓기에는 「만복의 근원이 되는 주님의 사랑 안에 / 남남인 우리가 만나 /광명의 빛으로 / 장래를 빛내 주십시오」라는 오늘의 의미를 강조한 것에서부터 「만일 / 남북통일이 된다면 / 광활한 산꼭대기에 올라 / 장엄한 세계를 바라보리라」로 민족의 염원을 노래한 것까지 다양한 작품이 발표돼 이채.
은박지를 이용한 모자 만들기가 진행될 무렵에는 이미 참석자의 상당수가 나름대로 파트너를 결정, 자연스럽게 서로의 머리에 모자를 씌워 주고 매무새를 다듬어 줄 정도로 친숙해졌다.
맹인 청년의 옆자리에 앉은 한 여성 장애자는 다과를 일일이 집어 먹여 주기도 했고, 옆 사람이 농아자임을 눈치챈 지체 부자유자는 즉시 필담으로 의사를 소통하기도.
휠체어를 탄 뇌성마비 청년은 같은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처녀를 찾아가 즉석 데이트를 신청, 복도 한편으로 나와 구혼하기도 했다.
한편 3시간에 걸쳐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어머니들은 창문을 기웃거리며 시종 자리를 뜨지 않아 안타까운 모정을 짐작케 해주었다.
26세인 막내아들과 함께 왔다는 이종례씨(63)는 『막상 이곳에 와 보니 더 불편한 사람도 많아 크게 위로가 된다』면서 『언어가 불편하고 지능이 약간 떨어지는 아눌의 결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장애 여성이라면 결혼시키겠다』고 말했다.
정상인들로부터 여러번 중매가 들어왔으나 돈을 요구하는 등 문제가 많아 이곳을 찾아왔다는 심정순씨(59)는 아들이 한 여성에게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것을 보고 『이게 꿈이 아닌가』하며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이날 모임을 총괄한 정하희 간사는 『돌아갈 때 마음에 드는 상대방의 이름을 자신의 명찰 뒤에 써내기로 했다』면서 서로 관심을 가질 경우 세 번까지는 서로 만나게 끔 주선해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YWCA는 이 모임을 통해 결혼이 성사되는 커플에 한해 무료 결혼식을 올려 주기로 했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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