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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간 꼬박 불렀다, 한국전 카투사 7052명 이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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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국전 발발 66주년을 맞은 지난 25일 오전 9시(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한국전 참전기념공원.

워싱턴서 6·25 참전 희생자 호명식
한·미 인사들, 한국명·영문명 낭독

“일병 성보헌, Bohun Sung(보헌 성), 병장 박복출, Bokchool Park(복출 박)..”

1950년 7월부터 53년 7월 정전 때까지 미군에 배속돼 북한·중공군에 맞서 싸우다 산화한 카투사(미 8군 한국군지원단) 장병 7052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불려졌다. 한국 측 낭독자와 미국 측 낭독자가 카투사 전사자의 한국이름과 영문이름을 번갈아 읽었다. 카투사들이 미국을 위해 희생했다는 걸 상징하고, 한·미 동맹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취지에서다.

초여름의 따가운 햇살 속에 열린 이날 행사는 오후 6시까지 9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졌다. 앞서 참전 미군 희생자의 이름을 부른 호명식은 있었지만 카투사 희생자들의 이름이 불린 건 처음이다. <본지 5월20일자 2면>

이날 호명식에는 한국 측에선 정규섭 예비역 제독 등 참전용사와 신경수 주미대사관 국방무관, 김종욱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장 등이 나섰고, 미국 측에선 에이브러햄 덴마크 국방부 동아시아담당 부차관보, 월터 샤프·존 D 존슨·버나드 샴포 전 주한미군 사령관 등이 참가했다.

또 카투사로 복무 중인 최연규(25·미 에모리대 졸업)상병, 김현재(22·미 일리노이대 휴학)상병도 이날 행사를 위해 워싱턴으로 파견돼 카투사 선배들의 이름을 읽어내려갔다. 미국 측 젊은이를 대표해선 버지니아주 밀포드의 캐롤라인 중학교 학생 2명이 낭독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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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워싱턴에서 열린 카투사 전사자 호명식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윌리엄 웨버 이사장.

카투사 호명식은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이사장인 윌리엄 웨버(91) 예비역 대령의 숙원사업이었다. 그는 원산 전투에서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었다. 2014년 국방부와 중앙일보가 수여하는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받은 그는 “한국전에 2만5000명의 카투사가 참전해 9000명 이상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이름 확인 인원 7052명)”며 “이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9000명의 미군병사가 더 죽었을 것이고, 또 그들의 부모와 형제들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란 점을 내가 죽기 전에 미국과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웨버 대령은 “숨진 뒤에도 그들과 우리는 형제”라며 “한국의 형제들을 기리며 존경을 표하는 이들이 미국에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최연규 상병은 “오늘 행사를 통해 선배 카투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알릴 수 있게돼 후배로서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욱 카투사연합회 회장은 “한·미 두 나라 젊은이들이 전쟁에서 흘린 피가 헛되지 않았음을 새삼 느끼는 자리였다”며 “카투사 출신과 주한미군 근무자들을 하나로 결집시켜 한·미 동맹 강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카투사 측은 한국전 참전기념공원 내에 한국전 전사자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유리벽’ 건립에 보태달라며 자체 모금한 6620달러를 웨버 대령에게 전달했다.

워싱턴=글·사진 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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