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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나서 강에서 성장 죽기 전 ‘고향’ 돌아와 산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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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호 27면

강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성장하는 연어와는 반대로 뱀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강에서 성장한다.

바다라고 하면 무릇 해안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구에는 해안선이 없는 바다가 하나 있다. 바로 사르가소 해(Sargasso Sea)다. 사르가소 해는 동서로 3200㎞, 남북으로 1100㎞나 되는 거대한 바다인데 해안선 대신 북대서양 중앙부를 흐르는 해류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에는 북대서양 해류, 동쪽에는 카나리아 해류, 남쪽에는 북적도 해류, 그리고 서쪽에는 멕시코 만류(灣流)가 흐르고 있다.


사르가소 해는 조해(藻海)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모자반을 비롯한 다양한 해조류와 작은 생물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 곳에는 매년 북미와 유럽의 강에서 살던 뱀장어들이 몰려든다. 사르가소 해에 도착한 뱀장어들은 주저하지 않고 400~700m 깊이까지 내려가 알을 낳고 정액을 뿌린다. 그렇다. 바다에서 살다가 고향 강으로 올라와 번식하는 연어와는 반대로 뱀장어는 강에서 살다가 고향 바다에 와서 산란하는 것이다. 연어와 마찬가지로 뱀장어도 새끼를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은 멕시코 만류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한다. 미국 북동부에 이른 뱀장어들은 절반은 북미 대륙의 강을 타고 서쪽으로 이동해 오대호(五大湖)에 이른다. 부모들이 살았던 곳이다. 나머지 절반은 멕시코 만류를 타고 계속 이동해 유럽 해안에 도착한다.


뱀장어는 생활사가 매우 복잡하고 그에 따른 생김새도 제각각이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투명한 대나무 잎처럼 생겼다고 해서 댓잎뱀장어라고 한다. 유럽 사람들은 버들잎을 닮았다는 뜻으로 렙토세팔루스(leptocephalus)라고 한다. 댓잎뱀장어는 사르가소 해에서 유럽 해안에 이를 때까지는 멕시코 만류를 타고 오기 때문에 이렇다 할 헤엄 장비가 필요없다. 스스로 헤엄치지 못하는 댓잎뱀장어는 몸 길이가 7~8㎝ 정도다.

파마나 지협이 생겨서 태평양과 대서양이 분리되기 전까지는 멕시코 만류의 힘이 약했다. 그때는 사르가소 해에서 부화한 뱀장어가 유럽까지 이동하지 못했다.

멕시코 만류의 도움이 끝나는 지점에 도달하면 몸이 변한다. 몸 길이가 5~6㎝로 약간 줄어들면서 가늘어지고 가슴지느러미가 커진다. 대륙 가까이에 이르면 댓잎뱀장어는 실뱀장어가 된다. 유럽에서는 유리처럼 투명하다고 해서 유리뱀장어(glass eel)라고 한다. 생김새가 하도 달라서 예전에는 댓잎뱀장어와 실뱀장어를 다른 종으로 착각했다. 먹는 것을 멈춘 뱀장어들은 영국·프랑스뿐만 아니라 북쪽으로는 아이슬란드·노르웨이, 남쪽으로는 모로코와 발트 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서식지를 찾아간다. 이들은 몸이 투명하기 때문에 포식자들의 눈을 피할 수 있다.


실뱀장어는 석 달에 걸쳐 강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부모가 살던 곳에 도착한다. 이때부터 실뱀장어 몸에 색소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실뱀장어는 색깔이 진해지는 정도에 따라 흰실뱀장어와 흑실뱀장어로 나뉜다. 실뱀장어는 암수를 구분할 수 없다. 암수는 몸길이가 35㎝까지 자라는 두 살 무렵에야 구분 가능하다.


실뱀장어가 6년쯤 살면 배 부분이 노란색을 띠는 황뱀장어(yellow eel)가 된다. 이 황뱀장어가 사람들이 먹는 그 민물장어다.


아메리카뱀장어와 유럽뱀장어로 갈라져황뱀장어는 가을이 되면 산란을 위해 바다로 떠난다. 그런데 강과 바다는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성급하게 나섰다가는 큰 일 난다. 강 하구에서 두세 달 동안 바닷물에 적응하는 연습을 한다. 이때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아마 먹지 못한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만큼 바다는 적응하기 쉽지 않은 새로운 환경인 것이다. 그 사이에 몸은 노란색에서 은색으로 변한다. 은뱀장어(silver eel)는 눈과 지느러미가 유난히 커진다. 겨울이 되어 찬바람이 불면 비로소 은뱀장어는 고향을 향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다.

5000~6000㎞ 떨어진 사르가소 해까지 이동하는 6개월 동안 뱀장어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위와 장은 퇴화해서 거의 사라지고 그 자리를 생식소가 채운다. 자기 몸을 헐고 그 자리에 알과 정소를 채우는 것이다. 산란장에 도착할 무렵이 되면 커다란 눈과 생식소, 그리고 꼬리만 남는다. 산란장을 찾기 위한 눈과 그곳으로 헤엄치기 위한 꼬리만큼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달도 없는 캄캄한 그믐밤에 암컷과 수컷이 떼로 모여 산란을 한다. 그리고 죽는다. 마치 알을 낳은 연어들이 죽는 것처럼 말이다. 생명의 지고지순한 목적인 번식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것이다.


뱀장어들은 자기가 살던 강에서 짝짓기를 하는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대서양 건너편까지 수천 ㎞를 헤엄쳐 이동한다. 그런데 사르가소 해는 유럽뱀장어만의 텃밭이 아니다. 유럽뱀장어뿐만 아니라 아메리카뱀장어도 여기에 와서 번식한다. 두 종의 짝짓기 영역이 겹치는 것이다. 유럽뱀장어와 아메리카뱀장어가 독립적으로 등장하게 된 과정은 오랫동안 베일에 쌓여 있었다. 무수히 많은 과학자들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사르가소 바다 사이를 이동하면서 뱀장어의 생활사를 추적했지만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뱀장어의 진화와 생활사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들에게 지원이 따랐다. 산업적인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뱀장어는 자연계에서 극단적인 생활사를 겪는데 우리는 아직도 거기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만약 뱀장어의 생활사를 잘 알게되면 시장에 뱀장어 공급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게 이유였다. 덴마크 오루후스(Arhus) 대학의 미카엘 뮬러 한센 교수 연구팀에 스페인과 캐나다 과학자들이 합류해 국제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한센 연구팀은 뱀장어 미토콘드리아 유전체(게놈)를 분석했다. 세포 안에서 발전소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는 정자에는 없으며 오로지 난자에만 있다. 따라서 모든 동물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는 모계를 통해서만 후손에게 전달된다. 연구팀은 유럽뱀장어와 아메리카뱀장어를 각각 50마리씩 분석해 미토콘드리아 DNA를 비교했다. 그 결과 두 종의 뱀장어가 340만 년 전에는 같은 종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340만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금도 여전히 같은 사르가소 해에서 번식하는 두 종의 뱀장어가 서로 갈라져야 했던 것일까. 340만 년 전이라면 북미와 남미 대륙 사이에 파나마 육교가 등장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잘룩한 지협(地峽)이 융기해 두 대륙이 연결되자 태평양과 대서양이 분리됐다. 그러자 각 대양의 기후와 해류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여기서 태평양은 지금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대서양에서는 멕시코 만류가 더 강력해졌다.


340만 년 전의 오리지널 뱀장어 종은 북미에서만 살았지만 강력해진 멕시코 만류는 뱀장어 치어인 댓잎뱀장어를 유럽까지 떠내려보냈다. 유럽으로 떠밀려간 뱀장어는 거기에서 새로운 군집을 형성했다. 환경이 다르면 생물도 변하는 법. 유럽에 간 뱀장어들은 오리지널 아메리카뱀장어와는 다른 진화 압력을 받고 유럽뱀장어로 독립했다. 그 후 250만 년 전에 찾아온 빙하기는 두 종 사이의 차이를 더욱 크게 벌려놓아 진화의 방향을 틀어놓았다.

아메리카뱀장어는 사르가소 해에서 불과 1500㎞만 이동하면 연안에 도착하지만 유럽뱀장어는 무려 5000㎞를 이동해야 한다. 어린 뱀장어 시절의 기간이 다르므로 다른 진화 압력을 받아 다른 종이 되었다.

2015년 한센 연구팀의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얼마 있지 않아 다른 연구팀은 아메리카뱀장어와 유럽뱀장어를 구분해주는 유전자 표지를 30만 개 이상 찾아냈다. 두 뱀장어의 유전체는 거의 같았다. 특정한 영역에서만 차이가 있는데 이것들은 성장과 물질대사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다. 아메리카뱀장어는 6~9개월만 치어 상태인 댓잎뱀장어와 실뱀장어 단계를 거치는데 반해 유럽뱀장어는 이 시기가 몇 년이나 지속된다. 아메리카뱀장어 치어는 멕시코 만류를 따라 북아메리카 연안끼지 불과 1500㎞만 이동하면 되는데, 유럽뱀장어는 5000㎞ 이상 여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 길이에 따라서 물질대사의 변화가 필요했고 결국 다른 진화방향을 택한 것이다.


유럽에 도달하는 뱀장어 치어의 수는 매년 줄고 있다. 1980년대와 비교하면 단 2%에 불과하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유럽뱀장어를 야생에서 절멸한 가능성이 대단히 높음을 알려주는 ‘위급(Critically Endangered)’ 단계로, 아메리카뱀장어는 그보다 덜한 ‘위기(Endangered)’ 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한국, 두번째로 뱀장어 완전양식에 성공그렇다면 우리나라 뱀장어의 생활사는 어떨까. 우리나라와 중국·일본에 서식하는 뱀장어는 동북아뱀장어다. 이들의 산란장은 필리핀 동쪽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 북쪽의 마리아나 해저산맥이다. 마리아나 해구에서 태어난 뱀장어 치어가 우리나라까지 와서 살다가 다시 마리아나 해구까지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뛰어난 감각과 본능이 아닌 해류 덕분이다. 따라서 엘니뇨와 같은 기후 변화로 해류가 영향을 받으면 우리나라 연안으로 오는 치어 수는 줄어들게 된다.

윤학배 해양수산부 차관이 지난 21일 세계 두 번째로 성공한 뱀장어 완전양식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뱀장어 양식은 뱀장어 치어인 실뱀장어를 잡아다가 키우는 것이다. 실뱀장어 가격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당 수십만 원이었지만 97년 1400만원까지 치솟아 당시 1200만원이던 금보다도 비쌌다. 2014년 실뱀장어 값은 무려 4000만원. 가격도 가격이지만 수요를 당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실뱀장어 수요량은 매년 15t 정도이지만 국내 채집량은 2t에도 미치지 못한다. 유럽에서 다 자란 뱀장어를 수입하려면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난 21일 국립수산과학원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뱀장어 완전양식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완전양식이란 실뱀장어에서 양식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미에게서 알을 얻고 실뱀장어로 부화시킨 다음 어미로 성장시키고 거기서 다시 알과 실뱀장어를 얻어냈다는 것을 말한다. 아직 산업화까지는 멀었다. 이미 10년 전에 완전양식에 성공한 일본에서도 그것은 실험실의 성과일 뿐 상업적인 생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뱀장어 연구에 몰두한 국립수산과학원의 김대중 박사 연구팀에 경의를 표한다.


이정모서울 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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