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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북 미사일 발사를 원한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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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호 31면

북한이 22일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인 무수단(BM-25)을 두 발 발사했다. 한 발은 150km를 난 뒤 바다에 추락했고 나머지 한 발은 약 400㎞를 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기술적 설명은 많지만 발사 시점에 대한 언급은 많지 않다. 왜 북한은 지금 미사일 발사를 결정했을까.


북한은 아마도 22~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26차 동북아협력대화(NEACD)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고 싶어한 듯하다. NEACD는 6자 회담이지만 6자 회담이 아니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NEACD는 관련국 정부가 아닌 미국 캘리포니아대 ‘국제 분쟁 및 협력연구소’(IGCC)와 중국 외교부 산하 ‘중국국제문제연구원’(CIIS)이 공동 주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참석한 북한 대표단에 6자 회담 차석 대표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부국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에서는 성김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참석했다. 6자 회담 당사국의 수석·차석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다. 전문용어를 빌리면 1.5트랙(반관반민) 회담이 된 것이다.


NEACD와 관련한 또 다른 의문은 대화를 표방한 회담임에도 참석자 대부분이 실제로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의 대화 부재는 지난 칼럼에서 논했다. 한국과 일본도 현재 북한과 대화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북한의 새로운 절친으로 입지 강화를 위해 북한과 대화하고 있겠지만 실제 대화인지 무비판적 상호 존중 관계인지는 분명치 않다.


가장 큰 수수께끼는 중국이다. 중국과 북한이 대화를 재개했을까. 나는 이번 칼럼에서 북·중관계의 갑작스러운 전환을 추적하려고 한다. 지난해 내내 지속하던 중국과 북한의 사이의 긴장은 지난해 10월10일 류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가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창당 70주년 열병식 및 군중대회에 참석하며 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북한이 올 1월 6일 4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를 수용하면서 양측의 긴장은 다시 고조됐다.


하지만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 발사에 실패한 다음날인 지난 1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이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났다. 시 주석이 북한 고위급 특사를 만난 것은 3년 만에 처음이다. (시 주석은 3차 핵실험 이후인 2013년 5월 중국을 방문한 최용해 당시 북한군 총정치국장을 만났다.) 때문에 몇몇 전문가는 중국의 대북 정책이 또다시 뒤집혔다고 분석했다.


시 주석과 이 부위원장의 면담 시간이 20분에 불과하고 분위기가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중국의 주장에도, 면담 성사는 의미가 있다. 북한은 이번 면담이 분수령이 될 것으로 믿는 듯하다. 17일 조선중앙통신이 “박근혜가 아니더라도 우리와 손잡고 나갈 다른 대화의 상대는 얼마든지 있다”고 보도한 것이 그 예다. 여기서 다른 상대는 중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신호를 북한에 대한 정책 전환이나 북한과의 대화 재개로 판단할 조짐은 없다. 중국의 대북 제재는 완화되지 않았고 북핵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확고하다. 오히려 시 주석과 이 부위원장의 면담은 부분적으로는 한반도와 관련해 중국이 미국과의 협력이 아닌 다른 정책적 선택지가 있음을 미국에 상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위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베이징 방문을 앞둔 때 면담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4차 핵실험 이후 중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게 하려면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심한 압박이 북한 정권의 붕괴를 야기할까 두려워한다. 중국 동북부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이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쪽으로는 6자 회담의 재개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핵 프로그램의 포기를 주장하는 어떤 대화에도 관심이 없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대화가 재개됐더라도 마치 귀머거리 대화와 같다.


다시 NEACD로 돌아오자. 회담은 서로 익히 알고 있는 입장을 재확인하는 무의미한 리허설이었을 것이다. 중국은 6자 회담 재개를, 미국과 한국·일본은 비핵화를 주장했을 것이다. 북한은 “6자 회담은 죽었다”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전까지 회담은 지루했을 것이다.


이번 미사일 발사는 북한의 전형적 전략이다. 북한은 누구도 자신과 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미사일 발사로 주변국이 북한의 조건에 대한 대화를 수용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성김 대표와 최선희 부국장의 만남도 예상했을 것이다. 첫 번째 미사일 발사 실패에도 두 번째 미사일을 쏜 이유다.


그러나 이번 미사일 발사는 북한의 입지를 위협하는 중대한 오판이다. 중국에 미칠 영향만을 따져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6자 회담 당사국의 수석·차석 대표가 모두 모인 ‘미니 6자 회담’으로 불리는 NEACD가 베이징에서 열리는 상황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행사 주최자인 중국을 당황하게 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게다가 시 주석은 이 부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유관 당사국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3주 만에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시 주석의 뺨을 후려친 것과 다를 바 없다. 미사일 발사로 인해 북한에 대한 강경 노선에 무게가 실리게 됐다.


뿐만 아니다. 대북 정책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은 상대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럼에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미국과의 대화로 인해 중국의 대북 정책은 변화했다. 시간이 지나면 양측은 서로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의도에 대한 미국의 조바심에 좀 더 공감하게 될 것이고 미국도 북한에 대한 과도한 압박이 북한의 붕괴로 이어질까 두려워하는 중국의 속내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를 보여주듯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대북 정책과 관련한 미국의 접근은 중국이 더 북한을 압박하도록 자극하는 북한의 또 다른 도발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종종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미사일 발사는 미국이 원하는 것이었다. 중국을 화나게 했고, 국무부의 가장 경험 많은 한국통이 베이징에서 중국 당국자들과 대화할 기회를 만들었다. 나는 중국 당국자들이 북한을 더 압박하자고 주장하는 성김 대표의 주장에 더 귀를 기울였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북한과 국제사회의 협상과 대치의 역사는 길고도 곡절투성이다. 그 동안 국제 사회는 많은 실수를 범했다. 이에 대한 분석은 자세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북한도 역시 종종 실수를 했음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미사일 발사는 북한이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중대 실수 중 하나다.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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